헌재 1996. 3. 28. 95헌마211 [인용(취소)]

출처 헌법재판소

不起訴處分取消

(1996.3.28. 95헌마211 전원재판부)

[판례집 8권 1집, 273∼288]


판시사항



가. 사전구제절차(事前救濟節次)를 경유(經由)하지 아니한 흠결(欠缺)의 치유(治癒)

나. 검사(檢事)의 불기소처분(不起訴處分)으로 인한 기본권침해(基本權侵害)가 인정된 사례



결정요지



가. 청구인(請求人)이 검찰청법(檢察廳法)에 따른 재항고(再抗告)를 제기하고 그 결정이 있기도 전에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으나, 그 후 대검찰청(大檢察廳)의 재항고기각결정(再抗告棄却決定)이 있었으므로 심판청구 당시에 존재하던 사전구제절차미경유(事前救濟節次未經由)의 흠결(欠缺)은 그로써 치유되었다.

나. 피고소인(被告訴人)이 뇌물사건의 재판확정 후 그 재판에서의 진술이 위증이라고 한 검찰에서의 자백(自白)은 모해위증죄(謀害僞證罪) 등으로 처벌받게 될 것까지 감수한 것으로서 쉽사리 배척될 성질의 것이 아님에도, 검사(檢事)가 피고소인(被告訴人)이 수령한 뇌물자금과 공여한 뇌물액수의 정확한 내역 및 피고소인(被告訴人)이 위 자백을 하게 된 연유 등에 대하여 보다 면밀한 조사와 검토를 하지 아니한 채 피고소인의 자백을 배척하고 피고소인에게 혐의없음의 불기소처분(不起訴處分)을 한 것은 정의(正義)와 형평(衡平)에 반하는 자의적(恣意的)인 수사(搜査)와 증거판단(證據判斷)을 통하여 청구인(請求人)의 평등권(平等權)과 재판절차진술권(裁判節次陳述權)을 침해한 것이다.

재판관 김용준, 재판관 정경식, 재판관 고중석의 반대의견

나. 구체적(具體的) 사건(事件)에 있어서 사실인정(事實認定)에 관한 종국적 권한은 법원(法院)에 있고, 법원의 확정판결(確定判決)은 존중되어야 하므로, 확정판결이 인정한 사실과 다른 사실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그 재판에 현출된 증거들의

증명력(證明力)을 압도할 수 있을 만한 고도(高度)의 증명력(證明力)을 가진 새로운 증거자료가 요구된다고 보아야 할 것인바, 피고소인이 뇌물사건의 재판확정 후 검찰에서 한 위증사실의 자백이 당초 뇌물사건의 재판과정에서 한 진술에 비하여 압도할만한 신빙성(信憑性)이 있는 증거(證據)로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불기소처분(不起訴處分)을 취소(取消)하는 것은 부당하다.

【당사자】

청구인 변○정

대리인 변호사 이종순

피청구인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참조조문



헌법(憲法) 제11조 제1항, 제27조 제5항

헌법재판소법(憲法裁判所法) 제68조 제1항



주문



피청구인이 1995.5.31. 서울지방검찰청 1994년 형제131434호 사건의 피의자 김○준에 대하여 한 불기소처분은 청구인의 평등권과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

이 사건 기록과 서울지방검찰청 1994년 형제131434호 불기소사건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가. 청구인은 1987.1.23.부터 1988.7.31.까지 서울특별시 환경녹지국장으로 재직하면서 1988.4.23. 11:00경 서울시청내 환경녹지국장실에서 유진관광주식회사의 건설본부장인 청구외 김○준으로

부터 당시 위 회사에서 신축예정인 유진관광호텔의 건축과 관련하여 청탁의 명목으로 10만원권 자기앞수표 100장 금 1,000만원을 교부받아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되고, 위 김○준은 위와 같이 청구인에게 금 1,000만원을 교부한 것을 비롯하여 서울시청 공무원들에게 수차에 걸쳐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불구속기소(서울지방검찰청 90형제43950호, 서울형사지방법원 90고합843호, 이하 󰡒위 뇌물사건󰡓이라 한다)되어 1990.10.19. 청구인은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위 김○준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 선고받았다. 이에 대하여 청구인과 위 김○준은 모두 항소(서울고등법원 90노4093호)를 하였으나 1991.12.6. 위 항소가 각 기각되자 위 김○준은 상고를 포기하고 청구인은 상고(대법원 91도 3319호)를 제기하여 1992.6.26. 대법원(91도 3319호)의 상고기각판결을 받음으로써 각 그 형이 확정되었다.

나. 청구인은 자신이 위와 같은 유죄판결을 받게 된 것은 위 김○준의 거짓 증언을 재판부에서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라며 1994.12.8. 위 김○준을 위증혐의로 고소(서울지방검찰청 94형제131434호, 이하 󰡒이사건 위증사건󰡓이라 한다)하였는데, 그 고소사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피고소인 김○준(이하 󰡒피고소인󰡓이라 한다)은 1987.5.경부터 1989.2.말경까지 유진관광주식회사 건설본부장으로 재직하던 자인바, 1990.8.17.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24부 제3회공판 법정에서 청구인 등 당시 서울시청 공무원 등에 대한 90고합843호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수수) 등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하여 선서한 후 증언함에 있어, 사실은 1988.4.23. 당시 서울특별시 환경

녹지국장인 청구인에게 자기앞수표 10만원권 100매 합계 금 1,000만원을 교부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청구인을 한번도 만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1988.4.23. 서울시청 환경녹지국장 사무실에서 곽영태와 같이 청구인을 만나서 유진관광주식회사가 추진중인 유진관광호텔의 신축공사와 관련하여 잘 봐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하면서 청구인에게 금 1,000만원을 준 사실이 있다󰡓라고 허위의 공수를 하여 위증한 것이다.

다. 위 고소사건을 수사한 피청구인은 1995.5.31. 다음과 같은 이유로 혐의없음 불기소처분을 하였다.

(1) 피고소인은 1988.4.23. 당시 서울특별시 환경녹지국장 사무실에서 청구인에게 유진관광호텔의 신축사업과 관련하여 금 1,000만원을 교부한 사실이 없음에도 검찰수사관들의 강압에 의하여 청구인에게 금 1,000만원을 교부하였다고 허위자백을 한 것이며, 그 후 법정에서도 진술을 번복하지 못하도록 강요받아 위증하게 된 것이라고 하면서 위증사실을 자백하고 있다. 그러나 이 뇌물사건 수사당시 수사관이던 참고인 김기수, 같은 양승각, 같은 최준영에 대한 각 진술조서 기재내용에 의하면 검찰수사 과정에서 어떠한 강압이나 가혹행위가 가해질 여지가 없었으며 수십차례에 이르는 공판기일에 검찰수사관들이 피고소인과 공판정에 동행한 것은 피고소인이 신변보호를 요청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피고소인이 법정증언을 함에 있어 수사관들이 강압이나 강요를 한 일이 없다.

(2) 청구인은 위 뇌물사건수사 이전에는 피고소인을 전혀 몰랐으며, 명함을 건네받은 사실이나 금 1,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나, 피고소인은 김인식 건설관리국장의 소개로 청구인과 인

사를 하고 명함을 건네주었다고 진술하고 있고, 청구인의 사무실에서 피고소인의 명함이 발견된 점 등으로 보아 청구인의 주장만을 그대로 인정하기 부족하다.

(3) 피고소인은 청구인이 제출한 피고소인과의 대화녹취서의 기재내용 중 󰡒청구인이 피고소인을 전혀 몰랐으며, 피고소인의 명함을 받지 않았다󰡓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하면서 녹취서의 내용 중 일부의 진실성을 부인하고 있으므로, 나머지 금 1,000만원을 청구인에게 교부하지 않았다고 하는 녹취서 기재 부분만으로는 고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로서 불충분하다.

(4) 이미 유죄판결이 확정된 뇌물사건의 기본사실을 뒤집고 피고소인의 자백을 그대로 믿을 만한 자료가 없다.

라. 청구인은 이에 불복하여 검찰청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항고를 제기하였으나 1995.6.28. 항고가 기각되자 재항고를 제기한 후, 이 사건 공소시효의 만료가 임박하여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위 재항고에 대한 결정이 있기 전인 1995.7.10.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에 이르렀다.

2. 청구인의 주장 및 피청구인의 답변요지

가. 청구인의 주장요지

피고소인이 스스로 위증사실을 자백하는 등 위증한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므로 피고소인은 당연히 기소되어 처벌받아야 할 것임에도 피청구인이 혐의없음 불기소처분을 한 것은 피청구인이 검찰권행사에 있어 청구인을 차별대우하여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자의적인 수사를 함으로써 청구인의 평등권 및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 것이다.

나. 피청구인의 답변요지

피청구인의 이 사건 불기소처분은 객관적, 합리적인 증거에 따라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공정하게 법률을 적용하여 내려진 것이므로 정당한 것이다.

3. 판단

가. 적법요건에 대한 판단

(1) 사건구제절차의 경유

청구인은 검찰청법에 따른 재항고를 제기하고 그 결정이 있기도 전인 1995.7.10.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으나 1995.7.14. 대검찰청의 재항고기각결정이 있었으므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 당시에 존재하였던 사전구제절차미경유의 흠결은 그로써 치유되었다.

(2) 공소시효의 완성 여부

형법 제152조는 제1항의 단순위증죄에 대하여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의 형을, 제2항의 모해위증죄에 대하여는 10년 이하의 징역의 형을 각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고소사실이 형법 제152조 제1항의 단순위증죄에 해당한다면 그에 대한 공소시효는 범행종료일인 1990.8.17.부터 5년이 경과한 1995.8.16.로서 이미 완성되었고(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4호 참조), 형법 제152조 제2항의 모해위증죄에 해당한다면 7년이 경과한 1997.8.16. 비로소 공소시효가 완성될 것이다(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3호 참조).

그런데 이 사건 고소사실은 청구인에 대한 뇌물수수 등 형사사건에 관한 위증으로서 자백하는 바에 의하면 피고소인의 이 사건 위

증은 위 형사사건의 피고인이었던 청구인에게 불리하게 할 목적으로 행하여진 것임이 분명하므로 형법 제152조 제2항이 규정하고 있는 모해위증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이 사건 고소사실에 대한 공소시효는 1997.8.16.에야 완성될 것이므로 권리보호의 이익이 있다.

나. 본안에 관한 판단

(1) 쟁점의 정리

위 뇌물사건 및 이 사건 위증사건에 있어서 사실관계의 핵심은 결국 피고소인이 1988.4.23. 청구인에게 10만원권 수표 100장, 즉 금 1,000만원을 뇌물로서 공여하고 청구인은 이를 수수하였는가의 여부이다.

이에 대하여 청구인은 위 뇌물사건 이래 이 사건 위증사건에 이르기까지 일관하여 위 뇌물사건 이전에는 피고소인을 알지도 못하였고 그로부터 위 돈을 받은 사실도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피고소인은 위 뇌물사건에서는 검찰이래 제1심 및 제2심의 법정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서울특별시 건설관리국장이던 김인식을 통하여 청구인을 소개받고 명함을 건네준 다음 1988.4.23. 유진관광주식회사 이사인 곽영태와 같이 청구인의 사무실로 찾아가 유진관광호텔 건물신축과 관련하여 청구인에게 위 돈을 준 사실이 있다고 진술하였다가 이 사건 위증사건에서는 태도를 바꾸어 김인식의 소개로 청구인을 한 차례 만난 것은 사실이나 청구인에게 위 돈을 준 사실은 전혀 없다고 위 뇌물사건에서의 진술을 정면으로 번복하고 있다. 그러면서 피고소인은 자신이 위 뇌물사건에서 위와 같이 진술하게 된 것은 당시 40여일간의 도피생활로 지친 나머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수를 한 상황에서 검찰수사관들이 유진관광주식회사의 대표이사이던 곽유지가 작성하였다는 뇌물수수자와 금액이 기재된 메모지와 다른 참고인 등이 작성한 진술서 등을 보여 주면서 이를 토대로 자백진술서를 쓰라고 요구하므로 마지 못하여 청구인에 대한 위 뇌물공여의 사실을 시인하였고, 그 후 법정에서도 검찰수사시의 진술대로 공술해 달라는 검찰수사관들의 회유를 뿌리치지 못하여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던 것이라고 변명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 심판에 있어서의 쟁점은 피고소인의 위와 같이 서로 상반된 두가지의 진술 중에서 어느 쪽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는가 하는 점에 있다.

(2) 물론 이 사건 위증사건의 전제가 되는 위 뇌물사건에 있어서 피고소인의 증뢰죄와 청구인의 수뢰죄의 양자에 대하여 이미 모두 유죄의 판결이 확정되었고, 청구인으로서는 청구인의 주장과 다른 피고소인의 공술을 토대로 진행되었던 위 뇌물사건의 공판과정에서도 피고소인에 대한 위증의 고소가 가능하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상고심판결로써 유죄의 판결이 확정된 뒤에야 비로소 이 사건 고소를 제기한 청구인의 태도가 그리 자연스럽다고는 여겨지지 아니하는 이 시점에서, 당재판소가 나서서 전적으로 상반된 피고소인의 위 두 가지 진술 중 어느 하나를 가리켜 허위라고 단정하기는 무척 어렵고 또 조심스러운 것은 이를 부인할 수 없다.

(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상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사실로 인하여 이 사건 위증사건에 있어서의 피고소인의 진술내용이 보다 신빙성이 높고 따라서 피고소인이 위 뇌물사건의 공

판정에서 한 공술의 내용은 사실에 어긋나는 위증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가) 첫째, 피고소인은 위 뇌물사건의 수십 차례에 이르는 제1심 및 제2심의 공판과정 내내 거의 예외없이 피고소인에 대한 직접 수사를 담당하였던 검찰수사관들과 동행하여 법정에 출석하고 그 면전에서 공술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피청구인은 위 뇌물사건의 재판과정에서 청구인을 비롯한 당시 구속된 서울시청 공무원 및 그 가족들로부터 위협을 받은 피고소인이 검찰에 대하여 법정 출석시 신변보호를 요청하므로 그 요청을 받아들여 수십 차례에 이르는 공판에 수사관들이 동행을 하게 된 것이지 피고소인으로 하여금 진술을 번복하지 못하도록 회유하거나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피고소인도 자신이 신변보호를 요청한 적이 있음은 이를 시인하고 있다(수사기록 137정).

그러나 단지 피고소인의 요청에 따라 피고소인에 대한 신변보호의 필요가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면 하급검찰공무원이나 경찰관, 교도관 등으로 하여금 피고소인을 계호케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수사를 담당하고 사무관의 직급을 가진 수사관이 2년여에 걸친 수십 차례의 공판 때마다 피고소인과 동행하였다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극히 이례적이고 부자연스럽다고 할 것이고, 위 뇌물사건의 제1심 및 제2심에서 피고소인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 차정일도 󰡒피고소인이 뇌물공여사실에 관하여 수사를 받고 나온 후 강압적인 수사로 인하여 청구인에게는 뇌물을 준 일이 없음에도 뇌물을 주었다고 허위진술하였다고 하소연하기에 이후부

터라도 진실을 밝히도록 조언하였고, 그후 1심 재판과정에서 검찰진술을 반복하기에 어느 것이 진실이냐고 물으니 청구인에게 돈을 주지 않은 것이 진실인데 법정에 들어갈 때마다 검찰수사관들이 사전에 만나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도저히 진실을 밝힐 수 없다고 하므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본인에게도 이롭다고 조언하였으나, 심약한 피고소인이 법정에만 들어가면 검찰에서의 진술을 반복하는 바람에 진정 사실을 말하지 아니하면 변호인을 사임할 수 밖에 없다 하여 급기야는 1심변론종결을 앞두고 사임하기에 이르렀으며, 1심판결의 선고 후 피고소인이 다시 변호인을 찾아와 항소심에서는 진실을 밝히겠으나 다시 사건을 맡아 달라고 하여 2심변론을 맡았으나 항소심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는(수사기록 1129,1130쪽)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소인이 위 뇌물사건의 공판정에서 한 공술은 자신을 직접 조사한 검찰수사관의 면전에서 매우 부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여지고 따라서 그 내용의 신빙성에도 의심이 간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 둘째, 위 뇌물사건에서 피고소인이 청구인을 찾아가 돈을 전해줄 때 피고소인과 동행하였다는 곽영태가 자신은 김인식, 김영수 국장실을 한두번 방문한 일이 있으나 청구인을 만나거나 찾아간 사실은 전혀 없으며 피고소인이 청구인에게 돈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진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수사기록 961 내지 963정, 1080 내지 1081정).

물론 위 곽영태 역시 위 뇌물사건에 있어서는 검찰이래 제1심의 제3회 공판에 이르기까지 줄곧 피고소인이 청구인에게 이 돈을 교

부할 때 피고소인과 동행하였다고 진술한 바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위 곽영태는 위 뇌물사건의 제4회 공판에 이르러 그 때까지의 진술을 번복하면서 청구인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며 피고소인과 함께 청구인을 찾아간 사실이 없다고 공술한 사실이 있고, 위 제4회 공판에서의 공술내용은 그 후 제1심 재판장에게 송부된 위 곽영태 명의의 공증진술서와 검찰의 곽영태에 대한 참고인진술조서에 의하여 다시 번복되는 과정을 겪은 사실이 인정된다.

그런데 곽영태의 위 제4회 공판시 공술내용이 공판정에서의 진술서와 검찰의 진술조서에 의하여 다시 부인되었다는 것 또한 그리 자연스럽지 아니하여 위 (가)항에서 본 것과 유사한 경위로 위 곽영태 역시 자유스럽지 아니한 상태에서 청구인의 범죄사실이 입증되는 방향으로의 증언을 하도록 회유받고 있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점에서 볼 때, 위 뇌물사건의 검찰 및 제1심 제3회 공판까지의 증언내용보다는 오히려 위 제4회 공판정에서의 공술과 이 사건 위증사건에서의 일관된 진술내용이 더 믿을 만하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된다.

(다) 셋째, 위 뇌물사건에서 피청구인은 피고소인이 청구인을 포함한 관계공무원에게 뇌물로 제공한 수표는 신한은행 본점 발행의 10만원권 자기앞수표로서 1988.4.20.자 발행의 200매(수표번호 25711651-25711850) 및 1988.4.21.자 발행의 500매(수표번호 25713451-25713950) 등 700매 중 523매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의 수표추적결과에 의하면 위 700매 중 청구인이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 것은 단 1매도 없다는 사실이다.

비록 10만원권 자기앞수표가 현금의 대용으로 엄격한 신분의 확

인없이 유통되는 것이 거래의 실정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위 700매의 수표 중에 피고소인이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 수표만 해도 무려 152매에 이르고 피고소인 외에도 곽유지 등 피고소인의 주변인물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수표도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음에 비추어 본다면, 청구인이 받았다는 100매의 수표 중 청구인 혹인 청구인의 주변인물에 의하여 사용된 것으로 밝혀진 수표가 단 1매도 없었다는 것은 만약 청구인이 피고소인으로부터 위 700매의 수표 중 100매를 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좀처럼 상정하기 어려운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피고소인이 위 뇌물사건에서는 자신이 중간에서 가로챈 수표가 700매 중 52매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으나 이 사건 위증사건에서는 그것이 100매가 넘을 뿐만 아니라 원래 청구인에게 주기로 되어있던 수표의 일부도 자신이 써버렸던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피고소인이 곽유지로부터 청구인에 대한 뇌물자금조로 받은 수표를 임의로 사용해버린 후에 위 뇌물사건의 검찰수사나 법정증언시에는 마치 실제 청구인에게 이를 전달한 것처럼 거짓진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라) 끝으로 피고소인이 이 사건 위증사건에서 위 뇌물사건에서의 진술을 뒤집어 청구인에게 위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보아 오로지 피고소인에게 불리할 뿐임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주장을 일관되게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피고소인의 이 사건 위증사건에서의 진술이 사실로 인정될 경우에 피고소인의 위 뇌물사건에서의 법정증언은 모두 모해위

증죄를 구성하게 도고 피고소인이 뇌물자금으로 받은 수표를 임의로 사용해 버렸다는 부분 또한 횡령죄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처벌을 면하지 못할 것임에 대하여, 피고소인에 대한 이 사건 위증사건의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에 재심을 통하여 위 뇌물사건의 확정판결 중 청구인에 대한 증뢰부분에 대한 무죄판결을 받아낸다 하더라도 이미 청구인을 포함한 수인의 공무원들에 대한 증뢰의 경합범으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고 있는 피고소인으로서는 구체적인 결과에 있어 뚜렷한 이점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자신에게 불리하기만 한 사실을 시인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피고소인은 자신도 모르게 이 사건 고소를 한 청구인에 대하여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끼고(수사기록 1119정), 김인식을 통하여 청구인을 소개받고 자신의 명함을 건낸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청구인의 담당업무가 유진관광주식회사의 호텔신축과 관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는 등 오히려 청구인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진술을 서슴지 않으면서도(수사기록 1091정 내지 1104정) 뇌물공여사실에 대하여만은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청구인과 간에 어떤 불순한 담합이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4. 결론

과연 그렇다면 이 사건 위증사건을 수사하는 피청구인으로서는 곽유지로부터 피고소인에게 뇌물자금조로 제공된 금액, 그 중에서 피고소인이 횡령한 금액과 청구인을 제외한 나머지 공무원들에게 공여한 금액의 정확한 내역을 조사하여 실제로 청구인에게도 위 뇌물자금 중의 일부가 공여될 여지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피고소인이 자신이 위증죄 등으로 처벌받게 될 것을 감수하고서도 이 사건 위증사건에서와 같은 진술을 하게 된 연유 등에 대하여도 보다 면밀한 조사와 검토를 하는 등으로 피고소인의 이 사건 위증사건에 있어서의 진술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였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위 뇌물사건의 담당수사관이었던 참고인 김기수, 양승각, 최준영 등의 진술만을 토대로 피고소인의 자백을 그대로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고 단정하여 피고소인에게 혐의없음의 불기소처분을 한 것은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자의적인 수사와 증거판단을 통하여 헌법상 형사피해자로서 청구인에게 보장된 청구인의 평등권과 재판절차에서의 진술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피청구인의 피고소인에 대한 이 사건 불기소처분은 이를 취소하기로 하여 재판관 중 재판관 김용준, 재판관 정경식, 재판관 고중석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재판관 전원의 의견일치에 따라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5. 재판관 김용준, 재판관 정경식, 재판관 고중석의 반대의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없다. 다수의견의 요지는 피고소인이 당초 위 뇌물사건의 공판과정에서 한 진술이 검찰수사관의 면전에서 이루어진 것인 점, 위 곽영태가 위 뇌물사건의 4차 공판에서 당초의 진술을 번복하면서 피고소인이 청구인에게 돈을 준 적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진술한 점, 수표추적결과 피고소인이 청구인에게 전해주었다는 수표 100매 중 청구인이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 것은 단 1매도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소인이 위 뇌물사건의 재판확정후 모해위증죄 등에 의한 처벌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검찰에서 한 위증사실의 자백은 쉽사리

배척될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피청구인이 위 자백의 연유 등에 대하여 면밀한 조사와 검토를 하지 아니한 채 이를 배척하고 만연히 불기소처분을 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 사건에 있어서 사실인정에 관한 종국적 권한은 법원에 있고, 법원의 확정판결은 존중되어야 하므로, 확정판결이 인정한 사실과 다른 사실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그 재판에 현출된 증거들의 증명력을 압도할 수 있을 만한 고도의 증명력을 가진 새로운 증거자료가 요구된다고 보아야 할 것인바, 특히 이 사건의 경우 피고소인의 위증사실의 인정 여부는 이미 유죄로 확정된 피고소인의 증뢰사실과 필요적 공범관계인 청구인의 수뢰사실의 인정 여부와 표리관계에 있는 것이므로, 피청구인이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자의적 수사와 증거판단을 한 것으로 보아 불기소처분을 취소하기 위하여는 이미 확정된 위 뇌물사건의 재판에 현출된 증거들의 증명력을 압도할 만한 새로운 증거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다수의견이 내세운 증거 중 피고소인이 위 뇌물사건의 재판확정후 검찰에서 한 위증사실의 자백 외에 그 밖의 자료나 정황은 이미 모두 위 뇌물사건의 재판과정에서 법원의 증거판단을 받아 배척된 것으로서 확정판결이 인정한 사실을 압도할 만한 증거가 되지 못하고, 피고소인이 당초 위 뇌물사건에서 한 진술은 청구인이 그 재판과정에서 일관하여 이를 적극 다투었던 관계로, 법원으로서도 위 재판에서 그 진술의 신빙성에 관하여 신중하게 판단을 하였을 것임이 분명하므로, 피고소인이 위 재판의 확정 후에 그 진술이 위증이라고 자백한 것이 당초 진술에 비하여 압도할 만한 신빙성이 있는 증거로 볼 수도 없다.

다수의견은 이 점에 관하여 피고소인의 자백이 자신에게 불리할 것일 뿐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보이지 않으므로 이와 같은 진술번복의 연유를 특히 세심히 조사하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피고소인이 위 뇌물사건에서 한 당초의 진술도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마찬가지이고 진술번복의 연유는 결국 법원의 증거취사의 자료에 불과하므로, 재판확정후의 진술번복의 연유를 조사하지 아니한 것을 근거로 불기소처분을 취소한다는 것은 부당하다.

그리고 다수의견은 검사의 수사와 증거판단에 현저히 정의와 공평에 반하는 자의가 개재되어 있을 경우에 한하여 불기소처분을 취소할 수 있다고 보아 온 헌법재판소의 종래의 심사기준에 맞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확정재판의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칠 우려가 있음을 지적해 둔다.

1996. 3. 28.

재판장 재판관 김용준

주 심 재판관 김문희

재판관 김진우

재판관 황도연

재판관 이재화

재판관 조승형

재판관 정경식

재판관 고중석

재판관 신창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