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993. 8. 24., 선고, 92므907, 판결]

출처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판시사항


가. 실효 또는 실권의 법리의 의미나. 중혼 성립 후 10여 년 동안 혼인취소청구권을 행사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권리가 소멸되었다고 할 수 없으나 그 행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가. 실효 또는 실권의 법리라 함은 권리자가 장기간에 걸쳐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의무자인 상대방이 이미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를 갖게 되었거나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추인하게 된 경우에 새삼스럽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될 때 그 권리행사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것을 의미한다.나. 중혼 성립 후 10여 년 동안 혼인취소청구권을 행사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권리가 소멸되었다고 할 수 없으나 그 행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참조조문


가.나. 민법 제2조 나. 같은 법 제810조, 제818조


참조판례


가. 대법원 1991.7.26. 선고 90다15488 판결(공1991,2237), 1992.1.21. 선고 91다30118 판결(공1992,884), 1992.2.28. 선고 91다28221 판결(공1992,1157)


전문


원고, 상고인 :
피고, 피상고인 :
원심판결 : 서울고등법원 1992.10.20. 선고 92르350 판결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상고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본다. 

1.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1) 망 C는 D생으로 경북 문경군에 본적을 둔 자로서 1955.5.18. 망 E와 혼인신고를 하고 그 사이에 1959년생의 딸 1명을 두었다.

(2) C는 E와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여 위 딸을 출산한 직후부터 별거하였으며 그 사이에 이혼을 추진하는 등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었다.

(3) 그런 상태에서 C는 친지의 소개로 피고를 만나 위 혼인사실을 숨긴 채 1965. 11. 8.경 피고와 결혼식을 올리고 동거에 들어갔으며 그 사이에 2남 2녀를 출산하였다.

(4) C는 중혼에 대한 피고의 항의를 받고 1975. 1. 30. 자신이 재외국민인 것처럼 가장하여 재외국민취적·호적정정및호적정리에관한임시특레법에 의한 취적신고를 함으로써 서울 성북구를 본적지로 하는 새로운 호적을 편제하게 한 후 1978.9.28. 피고와의 혼인신고를 하여 위 새로운 호적에 등재하게 하였다.

(5) C와 피고 사이에 출생한 2남 2녀는 원래의 호적과 새로운 호적에 2중으로 출생신고되었다가 1985. 11. 29. C가 사망한 후 법원의 허가를 얻어 호적정리되었으며 C와 피고 사이의 혼인관계 기재사항도 원래의 호적에 이기되었다.

(6) E는 C와 사실상 이혼상태에 들어간 후 1987. 3. 29. 사망할 때까지 C와 아무런 연락이 없었으며, 피고는 C와의 혼인관계를 유지하면서 자녀를 양육하는 등 처로서의 할일을 다하여 왔다.

(7) 한편 원고는 C의 이복동생으로서 C와 피고가 결혼식을 올린 직후부터 약 4년간 피고의 집에 기거하면서 학교를 다닌 일이 있는 등으로 양인의 혼인경위 및 혼인신고경위 그리고 C와 E와의 혼인파탄 경위등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기까지는 C와 피고의 혼인에 대하여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였다.

(8) C의 친척 중 원고를 제외한 나머지 친척들은 모두 C와 피고의 혼인을 인정하고 아무도 그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고 있다.

라는 사실을 인정한 다음,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C와 피고 사이의 혼인관계는 중혼으로서 취소의 대상이 되는 것이기는 하나, 그 사실관계에 비추어 볼 때 원고로서는 C가 이중호적을 편제하여 피고와의 혼인신고를 한 이래 10여년 동안 충분히 이 사건 소와 같은 내용의 소를 제기할 수 있었고 현실적으로 그와 같은 소제기를 기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지 아니하여 특히 C와 E가 모두 사망한 이제는 피고로서도 원고가 더 이상 그 취소권을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게 되었거나 또는 원고가 이 사건 소를 제기하기까지는 피고를 C의 처로서 인정함으로써 그 권리행사를 하지 아니할 것으로 추인하게 하였으니, 원고가 새삼스럽게 그 혼인취소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되고 그 권리는 실효 또는 실권의 법리에 따라 소멸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하여, 원고의 이 사건 소를 각하하였다.

2.  실효 또는 실권의 법리라 함은 권리자가 장기간에 걸쳐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의무자인 상대방이 이미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를 갖게 되었거나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추인하게 된 경우에 새삼스럽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가 될 때 그 권리행사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원 1991.7.26.선고 90다15488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원심이 인정한 사실에 의하더라도 원고가 중혼 성립 후 10년간 그 취소청구권을 행사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피고의 입장에서 법정의 취소청구권자인 원고가 더 이상 그 권리행사를 하지 아니할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를 갖게 되었다거나 원고의 그 동안의 언동에 의하여 피고가 원고는 취소청구권을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추인할 수 있게 되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민법의 관계규정에 의하면 민법 소정의 혼인취소사유 중 동의 없는 혼인, 동성혼, 재혼금지기간위반혼인, 악질등 사유에 의한 혼인, 사기, 강박으로 인한 혼인등에 대하여는 제척기간 또는 권리소멸사유를 규정하면서도( 민법 제819조 내지 제823조) 증혼과 연령미달 혼인에 대하여만은 권리소멸에 관한 사유를 규정하지 아니하고 있는바, 이는 중혼등의 반사회성, 반윤리성이 다른 혼인취소사유에 비하여 일층 무겁다고 본 입법자의 의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고, 그렇다면 중혼의 취소청구권에 관하여 장기간의 권리불행사등 사정만으로 가볍게 그 권리소멸을 인정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논지는 일응 이유 있다,

3.  그러나 한편 권리의 행사가 사회생활상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부당한 결과를 야기하거나 타인에게 손해를 줄 목적만으로 하여지는 것과 같이 공서양속에 위반하고 도의상 허용될 수 없는 때에는 권리의 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원심인정의 위 사실에다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피고와 그 소생의 2남2녀는 C의 사망 후 정리된 호적을 바탕으로 일가를 이루어 원만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 만일 이 사건 혼인이 취소된다면 피고는 C와의 혼인관계가 해소됨과 동시에 C의 호적에서 이탈하여야 하고 위 2남2녀는 혼인외 출생자로 되고 마는 등 신분상 및 사회생활상 큰 불편과 불이익을 입어야 하는 점, 이에 비하여 원고는 이 사건 혼인이 존속하든지 취소되든지 간에 경제적으로나 사회생활상으로 아무런 이해관계를 가지지 아니하며 신분상으로도 별다른 불이익을 입을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하는 점, E는 생존하는 동안 피고와 C 사이의 혼인에 대하여 아무런 이의를 제기한 일이 없으며 현재 생존하고 있는 E 소생의 딸도 다른 친척들과 마찬가지로 피고와 C 사이의 혼인을 인정하고 있는 점, 그리고 C와 E가 이미 사망한 지금에 와서 구태여 피고와 C 사이의 혼인을 취소하여야 할 공익상의 필요도 없는 점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한다면, 원고의 이 사건 혼인취소청구는 권리 본래의 사회적 목적을 벗어난 것으로서 권리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아니할 수 없다.

4.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되어야 할 것인바, 소를 각하한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도록 하는 것은 원고에게 불이익한 결과가 되므로 결국 원고의 상고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된다.

5.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비용은 패소자의 부담으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최재호(재판장) 배만운 김석수(주심) 최종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