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984. 6. 5., 선고, 84도460, 판결]

출처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판시사항


가. 범인을 잘 기억한다면서도 경찰이 피고인을 검거한 후에야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나. 잠든 절도피해자의 이마를 때려 깨운 경우 준강도상해죄의 성부


판결요지


가. 피해자가 경찰 또는 검찰에서 범인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분명히 기억한다고 진술하였으면서도, 같은 회사에 근무하여 평소 안면있는 피고인을 경찰에서 대면할 때까지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다가 경찰이 피고인을 범인으로 검거한 후에야 피고인을 범인이라 지목한 경우라면 그 진술은 납득하기 어렵다. 나. 절도 피해자가 잠을 자다가 이마를 맞고 잠이 깨어 비로소 맞은 것을 알았다고 진술할 뿐, 피해자가 소리를 지르므로 피고인이 체포를 면탈하기 위하여 피해자를 때린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면 피고인에게는 준강도 상해의 죄책을 지울 수 없다.


참조조문


가. 형사소송법 제308조 나. 형법 제335조


전문


피 고 인 :
상 고 인 : 피고인
변 호 인 : 변호사 추진수
원심판결 : 광주고등법원 1984.2.8. 선고 83노754 판결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피고인 및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함께 본다. 

1.  먼저 원심판결 중 피고인이 1982.9.27. 03:20경 광주시 서구 주월동에 있는 동양운수 시내버스회사내 안내양 기숙사 103호실에 이르러 잠을 자고 있는 피해자 1(20세)의 손목시계를 절취하려는 순간 동인이 잠에서 깨어나자 체포를 면탈할 목적으로 구두발로 동인의 얼굴을 1회 차서 요치 10일간 안면부 좌상을 입혔다고 인정한 부분에 관하여 살펴본다.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검사의 제1회 피의자신문 때에는 위 범행을 자백하였으나 제2회 신문 이후부터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바, 위 피해자의 진술을 보면 동인은 피고인이 검거되기 전의 경찰조사 때에는 범인의 키는 170센티 가량이고 머리는 장발이 아니며 옷은 청색 작업복인데 범인을 보면 알 수 있겠다고 진술하고(수사기록347,348정), 피고인이 검거된 후의 경찰조사 때에는 범행 당시에 본 범인의 얼굴과 옷으로 보아서 피고인이 범인임에 틀림없다고 진술하고 있으며(수사기록 405,406정), 검찰에서는 범인의 얼굴은 확실히 보지 못하였으나 도망가는 뒷모습으로 보아 키는 170센티 가량되는 건장한 남자로서 머리는 짧고 곱슬머리이고 입고 있던 옷은 청색 작업복 차림이었으며 범인의 머리모습과 키를 보면 기억할 수 있는데 대면한 피고인이 거의 같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으나(수사기록 1705, 1706정), 1심법정에 이르러서는 범인의 얼굴이나 체격, 머리모양 등을 보지 못하고 신발과 옷만 보았으며 수사기관에서 가지고 온 신발과 피고인이 자백한 것을 보고 범인으로 지목했다고 진술하고 있고 또 피고인은 같은 회사에 근무하기 때문에 평소에 보았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만일 위 피해자가 경찰이나 검찰 진술대로 범인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기억하고 있었다면 같은 회사에 근무하며 평소 보아서 알고 있는 피고인을 경찰에서 대면할 때까지 범인으로 지목한 바 없다가 경찰이 피고인을 범인으로 검거한 뒤에야 비로소 피고인이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는 것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점을 좀더 밝혀 보기 전에는 위 피해자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것이므로 위 피해자의 진술을 증거로 채용한 원심조치에는 증거가치의 판단을 그르친 허물이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2.  다음에 원심판결은 피고인이 1982.10.7 공소외 최명수 집의 작은방에 침입하여 피해자 2(28세) 가 혼자 잠을 자고 있는 틈을 이용하여 장롱을 열고 위 피해자의 핸드백을 뒤져 현금 45,000원이 들어 있는 지갑1개를 꺼내어 절취하는 순간 위 피해자가 잠에서 깨어나 피고인을 보고 소리를 지르자 체포를 면탈할 목적으로 방안에 놓여 있던 수석(돌)을 집어 들어 이마를 1회 때려위 피해자에게 약 2주간의 가료를 요하는 전두부심부열상을 가한 사실을 인정하고 피고인을 준강도상해죄로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위 피해자에 대한 사법경찰관 사무취급작성의 진술조서나 검사작성의 진술조서에 보면 위 피해자는 잠을 자다가 이마를 맞고 잠이 깨어 비로소 맞은 것을 알았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고, 기록을 살펴보아도 원심판시와 같이 위 피해자가 피고인을 보고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피고인이 체포를 면탈할 목적으로 위 피해자의 이마를 때린 것이라고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

결국 원심판단에는 증거없이 준강도 상해사실을 인정한 잘못이 있다고 할 것이다.

3.  또 원심은 피고인이 1982.10.17. 01:30경 광주시 서구 백운동 에 있는 공소외 1의 집에 이르러 열려진 대문을 통하여 2층으로 올라가 부엌문을 열고 응접실에 침입하여 신장위에 놓여 있던 드라이버 1개를 절취하여 바지 뒷주머니에 넣은뒤 작은 방에 들어가 장롱속을 뒤졌으나 금품을 발견치 못하자 다시 큰방으로 들어가 피해자 3(15세) 등 2명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벽에 걸려있던 핸드백 2개와 옷가지 등을 가지고 나와 연탄창고 위에서 대변을 보면서 핸드백 등을 뒤졌으나 현금 등이 나오지 않자, 피해자 3을 강간할 것을 마음 먹고 다시 방에 들어가 동인을 깨우고 소지하고 있던 드라이버로 동인의 귀옆 머리 부위를 1회 찔러 항거 불능케 한 후 동인의 바지를 벗기고 2, 3분간에 걸쳐 간음함으로써 동인으로 하여금 치료일수 미상의 처녀막 파열상을 입게 한 다음, 동인이 “엄마 엄마” 하면서 신음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동인을 살해할 것을 마음 먹고 위 드라이버로 동인의 앞 이마를 1회 깊이 찔러 동인으로 하여금 같은날 07:30경 조선대학교 부속병원에서 뇌실질 손상 등으로 인한 혈종형성으로 사망케 하여 동인을 살해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경찰에서 제1내지 3회진술(수사기록 1545정 내지 1573정)까지 위 범행을 부인하다가 제4회 진술(같은기록 1574정)에서 이를 자백하였고 검찰에 이르러 제1회 피의자신문때에는 위 자백을 유지하였으나 제2회 신문이후부터 진술을 번복하여 극구 부인하고 있는바, 위 검사의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외에 원심이 들고 있는 유죄의 증거(사인에 관한것 제외)로는 1심증인 김종완, 조달제, 2심증인 김동팔, 정운봉, 조달제, 정근호, 김형중, 문인환, 조희현의 각 증언과 감정의뢰회보서(1982.11.16자 및 1983.4.13자), 족적감정서 및 압수조서 등의 기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 우선 위 증거 중 감정의뢰회보서(수사기록 534정 및 1633정)에 의하면 이 사건 범행 현장에서 수집한 음모 2개와 대변의 혈액형은 비(B)형이고 두모의 혈액형은 에이(A)형이며 피해자의 음모의 혈액형은 비형인데 현장에서 수집된 음모와 피해자의 음모와의 동일성 여부는 가릴 수 없다는 것이며, 한편 피고인의 음모나 두모의 혈액형은 비형이라는 내용인바, 위와 같은 감정내용만으로는 피고인이 범인이라고 단정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되지 못함이 명백하다.

(2) 다음에 족적감정서(수사기록 1055정)에 의하면 피고인으로부터 압수한 구두의 우측 구두바닥 족적과 범행장소의 연탄창고벽에서 채취된 족적을 대조한 결과 구두바닥 문양의 마멸 특징 또는 파손 특징 등이 동일하고 각 특징점 간의 거리가 각각 동일하므로 결국 위 두 족적은 동일한 것이라고 감정하고 있다.

그러나 위 감정의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범행현장에서 채취된 족적의 사진이 극히 희미하여 그 사진만으로는 과연 위 감정서기재와 같은 구두바닥 문양의 마멸 특징이나 파손 특징을 가려낼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위 범행현장 족적의 사진에서 문양의 마멸 또는 파손의 특징점이라고 표시한 부분 상호간의 거리를 실측하여 보면 감정서기재거리표시와 맞지 않는 부분이있고 피고인으로부터 압수된 구두의 족적 사진에 표시된 거리와도 맞지않는 부분이 있으며 이는 단순히 거리표시의 오차라고 보아 넘기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범행현장 족적의 사진에서 감정서기재와 같은 구두바닥 문양의 마멸 특징이나 파손 특징을 가려내게 된 경위를 좀더 알아보고, 또 위와 같은 범행현장 족적과 압수된 구두바닥 족적의 특징점간 거리의 차이가 연탄 창고벽을 밟는 발의 모양에 따라 생길 수 있는지 등을 알아 보아서 납득할만한 설명이 서기 전에는 위 족적감정결과를 가지고 곧 피고인 소유의 구두족적이 위 범행장소의 족적과 동일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사법경찰관 작성의 실황조사서(수사기록1679정)에 보면 피고인이 범행장소에서 좌측발로 연탄창고벽을 딛고 그 창고 위에 올라서는 범행상황을 재현하고 있는데(위 실황조사서 첨부 사진(16) 참조)이는 위 연탄창고벽의 족적이 우측발의 족적이라고 본 위 감정결과와도 맞지 않는 것임을 덧붙여 둔다.

(3) 그밖의 증거들인 증인 김종완, 조달제, 정근호, 김형중, 문인환, 조희현 등은 이 사건 수사를 담당하거나 족적 감정을 한 경찰관 또는 모발감정을 한 과학수사연구소 직원으로서 위 사람들의 진술은 범행직후의 현장 상황이나 족적 또는 모발감정의 결과에 관한 내용이며 그밖에 김종팔, 정운봉은 피고인과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사람들로서 이들의 진술은 피고인의 근무상황에 관한 내용으로서, 위 증인들의 증언을 훑어 보아도 피고인의 범행을 뒷받침할 뚜렷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4) 그러고 보면 피고인의 검찰 제1회 신문시의 자백외에는 뚜렷한 증거가 없는 셈인데 피고인은 제2회 신문이후 위 자백을 번복하였을 뿐 아니라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모발감정이나 족적감정 등의 희박한 증거가치에 비추어 볼 때 현 단계로서는 위 자백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으니 결국 위와 같은 원심의 사실인정에는 심리미진과 그 증거가치의 판단을 그르친 잘못이 있다고 할 것이다.

4.  결국 원심판결은 위 1내지 3항에서 지적한 점에 비추어 유지될 수 없으므로 다른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하고,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성렬(재판장) 이일규 전상석 이회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