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9. 3. 21., 자, 2015모2229, 전원합의체 결정]
출처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판시사항
[1] ‘여순사건’ 당시 내란 및 국권문란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그 판결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 피고인들의 유족들이 그 후 위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여 재심개시결정이 있게 되자 검사가 재항고를 한 사안에서, 위 재심대상판결에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2] ‘여순사건’ 당시 내란 및 국권문란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그 판결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 피고인들의 유족들이 그 후 위 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여 재심개시결정이 있게 되자 검사가 재항고를 한 사안에서, 유죄의 확정판결로서 재심의 대상이 되는 위 재심대상판결이 존재한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다수의견] ‘여순사건’ 당시 내란 및 국권문란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그 판결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 피고인들의 유족들이 그 후 위 판결(이하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여 재심개시결정이 있게 되자 검사가 재항고를 한 사안에서, 형사소송법 제415조에서 정한 재항고의 절차에 관하여는 형사소송법에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성질상 상고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여야 하고, 사실인정의 전제로서 하는 증거의 취사선택과 증거의 증명력은 사실심 법원의 자유판단에 속하는 점, 형사재판에서 심증형성은 반드시 직접증거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증거로 할 수도 있는 점, 재심의 청구를 받은 법원은 재심청구 이유의 유무를 판단함에 필요한 경우 사실을 조사할 수 있고(형사소송법 제37조 제3항), 공판절차에 적용되는 엄격한 증거조사 방식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닌 점 및 대한민국헌법(1948. 7. 17. 제정된 것, 제헌헌법) 제9조, 구 형사소송법(1948. 3. 20. 군정법령 제176호로 개정된 것) 제3조, 제6조 등의 규정, 그리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여순사건 진실규명결정서를 비롯한 기록에서 알 수 있는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은 여순사건 당시 진압군이 순천지역을 회복한 후 군경에 의하여 반란군에 가담하거나 협조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감금되었다가 내란죄와 국권문란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유죄판결을 받았고, 피고인들을 체포·감금한 군경이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하는데도 이러한 구속영장 발부 없이 불법 체포·감금하였다고 인정하여 재심대상판결에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이동원의 반대의견] 위 사안에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는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재심사유로 규정하되 그 증명방법을 확정판결만으로 제한하였고, 제422조도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경우 다른 방법으로 증명할 길을 열어두고 있으나 그 증명은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하므로 그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데, 원심결정 이유를 비롯하여 기록을 살펴보아도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 그러한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어 확정판결을 대신할 수 있는 경우라고 보기 어려운 점, 여순사건 당시로부터 이미 70년의 세월이 지났으므로 그때 존재하였던 증거들이 멸실되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나, 형사소송법은 장기간이 경과하였다는 사정에 대하여 그로 인하여 공소시효가 완성한 경우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다른 방법에 의한 증명을 허용하고 있을 뿐 증명의 정도를 완화하고 있지는 않으므로(형사소송법 제422조), 설령 장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사법경찰관의 직무범죄를 증명할 충분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게 된 경우라도 법원으로서는 확정판결을 대신할 정도의 증명이 없는 이상 증거부족을 이유로 재심청구를 기각하여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사법경찰관이 구속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피고인들을 체포·구속하였다고 인정한 것은 증거가 아닌 막연한 추측에 기초한 것으로서, 이러한 잘못된 전제에서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에 관한 증명이 있다고 본 원심판단은 법령을 위반하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현저하게 벗어나 위법하다고 한 사례.
[2] [다수의견] ‘여순사건’ 당시 내란 및 국권문란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그 판결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 피고인들의 유족들이 그 후 위 판결(이하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여 재심개시결정이 있게 되자 검사가 재항고를 한 사안에서, 재심대상판결의 판결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판결의 존재와 판결서의 존재는 구별되는 것이고, 재심대상판결의 존재, 즉 판결의 선고와 확정 사실은 계엄지구사령부 사령관 명의로 작성된 고등군법회의명령 제3호 문서(이하 ‘판결집행명령서’라 한다), 당시의 언론보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여순사건 진실규명결정서 등 다른 자료를 통하여 인정할 수 있는 점, 재심대상판결의 판결서 원본이 작성되었으나 사변 등으로 멸실·분실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설령 처음부터 판결서가 작성되지 않았더라도 판결이 선고되고 확정되어 집행된 사실이 인정되는 이상 판결의 성립을 인정하는 데에는 영향이 없는 점, 여순사건 당시 선포된 계엄령과 그 계엄령 선포에 따라 설치된 군법회의에 대하여 법적 근거와 절차 등의 위헌·위법 논란이 있으나, 대한민국헌법(1948. 7. 17. 제정된 것, 제헌헌법) 제64조, 제76조 제2항, 제100조 아래 이루어진 계엄선포 상황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사법작용으로서 군법회의를 통한 판결이 선고된 이상 그 근거법령이나 절차, 내용 등이 위헌·위법하다고 평가되어 판결이 당연무효가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판결의 성립을 부정할 수는 없는 점, 또한 판결이 위와 같은 위헌·위법 사유로 당연무효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성립한 이상 형식적 확정력은 인정되고, 오히려 그러한 중대한 위헌·위법 상태를 바로잡기 위하여 재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하며, 이러한 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통한 구제를 긍정하는 것이 유죄의 확정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바로잡는다는 재심제도의 존재 목적에도 부합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유죄의 확정판결로서 재심의 대상이 되는 재심대상판결이 존재한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이기택의 반대의견] 위 사안에서,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할 만한 근거로는 ‘판결집행명령서’와 관련 언론보도가 있는데, 근본적으로 판결집행명령서의 기재 자체가 허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언론보도 내용은 당시 군법회의 측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보도한 것에 불과하여 별개의 독립한 증거라고 보기 어려운 점, 다수의견이 판결로서 인정하고 있는 재심대상판결에는 당시 계엄선포의 합헌성 내지 적법성, 일제 계엄령의 규범력, 군법회의의 설치근거 및 민간인에 대한 재판권 여부, 법무관 1인에 의한 단심 사형판결의 문제, 공소제기의 존부와 공소사실의 특정 여부, 공판의 개정 및 증거조사의 실시 여부, 판결서의 작성 여부 및 판결의 선고방법 등에 관하여 수많은 의문이 있고, 판결집행명령서나 그 밖에 어디에도 위와 같은 재판으로서의 요건과 절차, 판단의 실체 등에 관한 아무런 정보가 없으므로, 판결집행명령서에 기재된 바와 같은 재판이 실제로 있었더라도 이를 규범적 의미에서 재판으로서 성립·존재한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점, 군경들이 피고인들을 구속영장 발부 없이 체포·감금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와 같은 체포·감금이 어떤 혐의에 관한 것이었는지, 다수의견이 말하는 재심대상판결이 위 혐의에 관한 것이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이상 재심사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고, 엄밀히 표현하면 재심사유에 대한 판단 자체가 불가능한 점, 재심을 개시하더라도 공소사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워 재심본안에서의 결론은 무죄판결이 아닌 공소기각판결이 될 가능성이 크고, 재심을 통하여 형사보상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높지 않으며, 재심을 허용하더라도 재심본안에서 실체적 진실 규명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을 고려할 때 재심을 개시하는 것이 당초의 의도 내지 취지와 달리 희생자들에 대한 현실적인 구제가 되지 못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재심대상 확정판결은 존재한다고 볼 수 없고, 설령 판결이 존재한다고 보더라도 재심은 가능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타당하지도 않다고 한 사례.
참조조문
[1] 구 헌법(1952. 7. 7. 헌법 제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헌헌법) 제9조(현행 제12조 참조), 제64조(현행 제77조 참조), 제76조(현행 제101조, 제102조 참조), 부칙(1948. 7. 17.) 제100조, 구 형법(1953. 9. 18. 법률 제293호 형법의 제정으로 폐지) 제77조(현행 형법 제87조 참조), 제194조(현행 형법 제124조 참조), 구 형사소송법(1954. 9. 23. 법률 제341호 형사소송법이 제정되기 전의 것) 제3조(현행 제200조의2, 제200조의3, 제201조, 제212조 참조), 제6조(현행 제200조의2 제5항, 제200조의4, 제213조의2 참조), 형사소송법 제37조 제3항, 제307조, 제308조, 제415조, 제420조 제7호, 제422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1조, 제3조
[2] 구 헌법(1952. 7. 7. 헌법 제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헌헌법) 제64조(현행 제77조 참조), 제76조(현행 제101조, 제102조 참조), 부칙(1948. 7. 17.) 제100조, 구 국방경비법(1962. 1. 20. 법률 제1004호 군법회의법 부칙 제6조로 폐지) 제51조, 구 형법(1953. 9. 18. 법률 제293호 형법의 제정으로 폐지) 제77조(현행 형법 제87조 참조), 형사소송법 제42조, 제415조, 제420조, 형사소송규칙 제28조, 제166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제1조, 제3조,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제26조 제1항 제1호, 제2항
전문
피 고 인 : 망 피고인 1 외 2인
재심청구인 : 재심청구인 1 외 2인
재항고인 : 검사
원심결정 : 광주고법 2015. 7. 10.자 2014로157 결정
주문
재항고를 기각한다.
이유
재항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건의 경위와 쟁점
가. 재심청구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이 사건 재심을 청구하였다.
피고인들은 여순사건 당시인 1948. 11. 14.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호남계엄지구고등군법회의에서 구 형법(1953. 9. 18. 법률 제293호 형법의 제정으로 폐지된 것, 이하 같다) 제77조 내란죄, 포고령 제2호 국권문란죄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판결이 확정되어(이하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는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등의 재심사유가 있으므로 재심을 개시하여야 한다.
나. 제1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는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판단하여 재심개시결정을 하였다.
(1) 여수 ○○연대 소속 일부 군인들이 1948. 10. 20.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한 출항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켜 여수, 순천 등 지역을 점령하였으나, 정부 진압군이 1948. 10. 말 여순지역을 탈환하였다.
(2) 진압군 탈환 이후 군경은 반란군에 협조했다고 지목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재판도 받지 않고 총살되었고 나머지는 군법회의에 회부되거나 석방되었다.
(3) 피고인 1은 1948. 10. 말 △△국 소속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철도직원은 나와서 일하라.’는 연락을 받고 출근하였다가 순천역 광장에서 다른 동료 직원들과 함께 경찰에 체포·연행되어 순천역 옆에 있는 △△국 창고에 감금되었다. 피고인 2는 1948. 10. 말 순천시 ◈◈면□□리 마을에서, 피고인 3은 1948. 10. 말 순천시 ◇◇면☆☆리 마을에서 경찰에 체포·연행되어 순천경찰서에 감금되었다.
(4)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호남계엄지구고등군법회의는 1948. 11. 14. 피고인들에게 구 형법 제77조 내란죄, 포고령 제2호 국권문란죄로 사형을 선고하였고 그 무렵 위 판결이 확정되었다.
(5) 위 판결은 1948. 11. 24. 판결심사장관의 승인을 받고 그 무렵 집행되어 피고인들은 1948. 11. 말 사망하였다.
(6) 피고인들에 대한 위와 같은 구속과 재판과정 등이 가족들에게 통지되지 않았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정리위원회’라 한다)가 여순사건과 관련한 문서를 조사한 결과 영장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영장이 발부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도 없다.
(7) 피고인들은 위와 같이 법원이 발부한 사전 또는 사후 영장 없이 불법 체포·감금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경찰관들의 위와 같은 불법 체포·감금은 대한민국헌법(1948. 7. 17. 제정된 것, 이하 ‘제헌헌법’이라 한다) 제9조, 구 형사소송법(1948. 3. 20. 군정법령 제176호로 개정된 것, 이하 같다) 제3조, 제6조에서 정한 인신구속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구 형법 제194조에서 정한 특별공무원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 위 특별공무원 직권남용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422조에서 정한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는데도 유죄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한다.
다. 검사는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피고인들을 불법 체포·감금하였다는 직무상 범죄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며 즉시항고를 하였다.
라. 원심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제1심을 유지하고 검사의 즉시항고를 기각하였다.
(1)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가 피고인들을 포함한 254명에 대하여 호남계엄지구고등군법회의를 열었고 1948. 10. 23. 순천 탈환 이후 불과 22일 만인 1948. 11. 14. 피고인들을 포함한 102명에 대하여 판결로 사형을 선고하였으며 그 후 곧바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정리위원회의 방대한 조사결과에도 불구하고 영장이 발부되었음을 추단할 만한 자료가 없다.
(2) 이러한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은 법원이 발부한 사전 또는 사후 영장 없이 체포·구속되었다. 제1심이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저질렀음이 증명되었다고 인정한 것은 정당하다.
마. 검사가 즉시항고에서 한 것과 같은 주장을 하며 이 사건 재항고를 하였다.
바. 이 사건의 쟁점은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 즉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피고인들을 불법 체포·감금하였다고 인정한 원심의 사실인정이 적법한지 여부이다. 그리고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존재 여부도 문제 된다.
2.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의 존재
가. (1) 제헌헌법 제9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수색, 심문, 처벌과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 단, 범죄의 현행·범인의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수사기관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후에 영장의 교부를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
구 형사소송법 제3조는 ‘누구든지 구속당할 자의 성명 및 피의사건을 기재한 재판소가 발한 구속영장 없이는 신체의 구속을 받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예외로서 ‘다음 사항의 하나에 해당하며 또한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아니하다.’고 정하며 ‘① 피의자가 일정한 주거를 갖지 않은 경우, ② 그 장소에 있고 없음을 불문하고 형사소송법 제130조에 규정한 현행범인 경우. 그러나 범행 종료 후 48시간 이내에 신체를 구속하는 경우에 한한다. ③ 현행범의 취조에 의하여 공범을 발견한 경우. 그러나 범행 종료 후 48시간 이내에 신체를 구속하는 경우에 한한다. ④ 기결의 수인 또는 법령에 의하여 구속된 자가 도망한 경우, ⑤ 사체의 검증에 의하여 범인을 발견한 경우, ⑥ 피의자가 죄증을 인멸할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경우, ⑦ 피의자가 도망할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경우, ⑧ 피의자가 사형, 무기 또는 장기 1년 이상의 유기의 징역·금고에 처할 수 있는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정하고 있다. 제6조는 ‘검찰관, 사법경찰관 또는 기타 관헌이 제3조에 의하여 구속영장 없이 신체를 구속한 경우에는 서울시와 재판소가 있는 부, 군, 도에서는 그 구속한 때부터 48시간 이내에, 재판소가 없는 부, 군, 도에서는 5일 이내에 재판소로부터 구속영장의 발부를 얻어야 한다. 위 기간 내에 구속영장의 발부를 얻지 못한 경우에는 구속당한 자를 즉시 석방하여야 한다.’고 정하였다.
(2) 형사소송법 제415조는 재항고에 관하여 “항고법원 또는 고등법원의 결정에 대하여는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음을 이유로 하는 때에 한하여 대법원에 즉시항고를 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러한 재항고의 절차에 관하여는 형사소송법에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그 성질상 상고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여야 하고(대법원 1982. 8. 16.자 82모24 결정, 대법원 2012. 10. 29.자 2012모1090 결정 등 참조), 사실인정의 전제로서 하는 증거의 취사선택과 증거의 증명력은 사실심 법원의 자유판단에 속한다(대법원 1987. 2. 3.자 86모57 결정, 대법원 2018. 5. 2.자 2015모3243 결정 등 참조).
(3) 형사재판에서 심증형성은 반드시 직접증거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증거로 할 수도 있다(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4도2221 판결,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10도5948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재심의 청구를 받은 법원은 재심청구 이유의 유무를 판단함에 필요한 경우에는 사실을 조사할 수 있으며(형사소송법 제37조 제3항), 공판절차에 적용되는 엄격한 증거조사 방식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 재항고이유 주장은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법원의 사전 또는 사후 영장 없이 피고인들을 불법 체포·감금하였다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 이른 사실인정이 잘못되었다는 내용으로서 실질적으로 사실심 법원의 자유판단에 속하는 원심의 증거 선택과 증명력에 관한 판단을 다투는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위에서 보았듯이 당시 많은 민간인들이 반란군에 협조한 혐의로 즉석에서 처형되기도 하고 일부는 연행된 후 조사를 받고 즉결대상자로 결정되어 사살되거나 군법회의에 회부된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정리위원회의 순천지역 여순사건 진실규명결정서(이하 ‘진실규명결정서’라 한다)에는 여순사건 당시 군경에 의한 민간인들에 대한 체포·감금이 일정한 심사나 조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후 조사과정에서 비인도적인 취조와 고문이 자행되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피고인들의 체포·감금 과정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서 내용도 이에 부합한다.
이와 같이 민간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연행된 다음 즉결처분 또는 군법회의 회부로 나뉘었으므로 연행 당시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 위와 같은 법리와 관련 규정들 그리고 기록에서 알 수 있는 사정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인들은 여순사건 당시 진압군이 순천지역을 회복한 후 군경에 의하여 반란군에 가담하거나 협조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감금되었다가 내란죄와 국권문란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유죄판결을 받았고, 피고인들을 체포·감금한 군경이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하는데도 이러한 구속영장 발부 없이 불법 체포·감금하였다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따라서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가 있다고 인정한 제1심을 유지한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
3.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존재
가. 제1심과 원심은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 사실을 인정하였고, 검사도 원심에 이르기까지 이를 다투지 않았으며, 재항고심에서도 이를 다투지 않는다. 나아가 이에 관하여 살펴보아도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구체적인 판단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판결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이 판결의 존재와 판결서의 존재는 구별되는 것이고,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존재, 즉 판결의 선고와 확정 사실은 다른 자료를 통하여 인정할 수 있다.
(1) 재심청구의 대상은 유죄의 확정판결이다(형사소송법 제420조). 판결은 선고함으로써 성립하고, 공판정에서는 판결서에 따라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42조). 판결과 판결서는 개념적으로 다르다. 판결의 선고내용과 판결서의 내용이 다르면 선고된 내용에 따라 판결의 효력이 발생하고, 판결서는 판결의 내용을 확인하는 문서일 뿐 판결서가 판결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대법원 1973. 10. 10. 선고 73다555 판결, 대법원 1981. 5. 14.자 81모8 결정 등 참조). 따라서 판결서가 작성되지 않았거나 작성된 다음 멸실되어 존재하지 않더라도 판결이 선고되었다면 판결은 성립하여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이 유죄 확정판결이라면 재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판결서가 존재하지 않지만,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 다음 그 판결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 사실을 뒷받침하는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
(가)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사령관 공소외 1 명의로 1948. 11. 24. 작성된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호남계엄지구고등군법회의명령 제3호 문서(이하 ‘판결집행명령서’라 한다)가 존재한다. 위 문서에는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1948. 11. 14. 선고된 사실과 이 사건 피고인들을 포함한 피고인들의 성명·주소·직업, 공판장소, 죄목, 죄과, 범죄사실, 항변, 판정, 판결 내용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이어서 심사장관이 판결을 승인하고 집행을 명하며, 확인장관이 사형판결을 확인한다는 내용도 기재되어 있다.
(나) 일간지인 ▽▽신문은 1948. 11. 17.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선고된 사실을 보도하였다. 위 기사는 판결의 심리를 담당한 국방부 법무관 공소외 2 중령이 1948. 11. 15. 순천 제2차 고등군법회의 결과를 발표하였다는 제목으로 사형언도 102명 등 형량별 인원을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사형언도를 받은 102명의 형집행은 확인장관의 확인을 얻은 후 수일 내 집행할 것이라는 등의 판결 결과 발표 내용을 게재하였다.
(다) 진실규명결정서에도 정부가 계엄지구에서 고등군법회의를 설치하였고, 반란군 협조자로 지목된 민간인들 중 일부는 즉석에서 총살을 당했고 일부는 따로 수용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았다고 기재되어 있다.
(라) 진실규명결정서에는 피고인들이 1948. 11. 말 군경에 의하여 사살되었다는 유족들의 진술과 정리위원회가 2009. 1. 7. 피고인들을 비롯한 민간인 439명이 순천지역 여순사건 직후 군경에 의하여 불법적으로 사살되었다고 진실규명결정을 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그에 부합하는 진술서가 있다.
(3) 재심을 청구하려면 재심청구서에 원판결의 등본을 첨부하여 제출하여야 하고, 판결의 등본은 법원사무관 등이 원본에 의하여 작성하여야 한다(형사소송규칙 제166조, 제28조). 형사사건의 판결서 원본은 국가가 보존할 책임을 진다(검찰 보존사무규칙 제5조, 제18조, 군검찰 보존사무규칙 제5조, 제21조). 판결이 선고되었는데도 국가가 판결서 원본을 보존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한 책임을 피고인이나 재심청구인에게 지울 수는 없다. 판결서가 없다는 이유로 재심의 대상성을 부정한다면 판결서 부존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피고인 또는 재심청구인에게 지우는 것이 된다.
대법원은 재판서 등이 형집행에 절대로 필요하지는 않고 다만 증명자료로서 가장 적절하고 전형적인 것일 뿐이라며 원본이 멸실되어 등·초본의 작성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형의 종류 및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확히 하기에 족한 다른 증명자료를 첨부하여 재판 집행지휘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재판서 원본이 사변으로 분실된 사실을 인정한 예가 있다(대법원 1961. 1. 27.자 4293형항20 결정).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판결서 원본이 작성되었으나 사변 등으로 멸실·분실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설령 처음부터 판결서가 작성되지 않았더라도 판결이 선고되고 확정되어 집행된 사실이 인정되는 이상, 판결의 성립을 인정하는 데에는 영향이 없다.
다. 여순사건 당시 선포된 계엄령과 그 계엄령 선포에 따라 설치된 군법회의에 대하여 법적 근거와 절차 등의 위헌·위법 논란이 있다.
제헌헌법에는 군법회의 또는 군사법원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으나, 국방경비법에는 군법회의에 관한 근거규정을 두었다. 대법원은 제헌헌법 제76조 제2항을 근거로 국방경비법에서 정한 군법회의 재판을 합헌이라고 판단하였다(대법원 1955. 5. 24. 선고 4288형상100 판결).
제헌헌법 제64조는 “대통령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한다.”라고 정하여 계엄선포에 관한 헌법적 근거를 명시하였으나, 여순사건 당시에는 아직 계엄법(1949. 11. 24. 법률 제69호로 제정된 것)이 제정되지 않았다. 국방부 등 정부 기관은 1997년경 제주 4·3 사건 당시 계엄령에 관하여, 2010년경 여순사건 당시 계엄령에 관하여 제헌헌법 제100조에 따라 효력을 유지한 일제 계엄령에 따른 것이었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고, 이에 대하여 법리적인 논쟁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계엄선포 절차와 군법회의 등에 관하여 위헌·위법 논란이 있더라도, 위와 같은 제헌헌법 아래 이루어진 계엄선포 상황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사법작용으로서 군법회의를 통한 판결이 선고된 이상 그 근거법령이나 절차, 내용 등이 위헌·위법하다고 평가되어 판결이 당연무효가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판결의 성립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판결이 위와 같은 위헌·위법 사유로 당연무효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성립한 이상 형식적 확정력은 인정되고, 오히려 그러한 중대한 위헌·위법 상태를 바로잡기 위하여 재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통한 구제를 긍정하는 것이 유죄의 확정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바로잡는다는 재심제도의 존재 목적에도 부합한다.
라. 따라서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은 유죄의 확정판결로서 재심의 대상이 된다. 원심이 판결집행명령서를 판결문이라고 언급한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
4. 결론
검사의 재항고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에는 재심사유를 인정한 것에 대한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이동원의 반대의견과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하고 재심을 허용한 것에 대한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이기택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김상환의 보충의견이 있다.
5.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이동원의 반대의견
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는 “원판결, 전심판결 또는 그 판결의 기초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를 재심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422조는 “전 2조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판결로써 범죄가 증명됨을 재심청구의 이유로 할 경우에 그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하여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 단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재심은 확정된 종국판결에 중대한 흠이 있는 경우 그 판결의 취소와 이미 종결되었던 사건의 재심판을 구하는 비상의 불복신청방법으로서 그와 같은 중대한 흠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법적 안정성을 후퇴시키고 구체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이다. 형사소송법 제420조의 재심사유는 법적 안정성과 정의의 실현이라는 상반된 요청에 대하여 입법자가 법적 안정성을 후퇴시킬 예외적 사유를 규정한 것이다. 재심과 재심사유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것이므로 그 운용과 해석은 엄격하고 일관되게 이루어져야 한다.
위와 같은 형사소송법 규정과 재심의 이념 및 형사소송에서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하는 점(형사소송법 제307조 제1항)에 비추어 보면, 재심사유의 존재는 원칙적으로 재심을 청구하는 사람이 증명하여야 하고, 그러한 증명이 없으면 법원은 재심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는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재심사유로 규정하되 그 증명방법을 확정판결만으로 제한하였다. 제422조도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경우 다른 방법으로 증명할 길을 열어두고 있으나 그 증명은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하므로 그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대법원 1994. 7. 14.자 93모66 결정 등 참조).
다수의견은 이 사건 재심청구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의 존재가 증명되었다는 원심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한다. 그러나 원심결정 이유를 비롯하여 기록을 살펴보아도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 그러한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어 확정판결을 대신할 수 있는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다수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나. 원심이 이 사건 재심사유가 증명되었다고 본 이유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정리위원회는 여순사건에 대한 직권조사를 하면서 2007. 4.경부터 2008. 11.경까지 203명의 신청인을 조사하고, 여순사건 당시 경찰관이었던 15명과 당시 군인이었던 44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하였으며, 경찰에서 생산한 ‘보안기록조회회보서’, ‘사실조사서’ 등의 경찰 및 군 관련 자료조사와 국내외 일반자료조사, 현장조사 등을 실시한 결과 1948. 10. 말부터 1950. 2.경까지 순천지역에서 피고인들을 비롯한 438명의 민간인들이 반군에 협조하였거나 가담하였다는 혐의로 군경에 의하여 자의적이고 무리하게 연행되어 살해당하였다고 인정하고, 이들을 순천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의 희생자로 확인하는 내용의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던 점,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는 ◎◎◎국민학교에서 피고인들을 포함한 254명에 대한 호남계엄지구고등군법회의를 개정하였는데, 순천 탈환(1948. 10. 23.) 이후 불과 22일만인 1948. 11. 14.자 판결로써 피고인들을 포함한 102명에 대하여 사형을 선고하였고, 그 후 곧바로 사형이 집행된 점, 그럼에도 피고인들에 대한 판결문에는 죄과 ‘형법 제77조, 포고령 제2호 위반’, 범죄사실 ‘내란 및 국권문란죄’라고만 기재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범죄사실의 내용과 증거의 요지가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 위와 같은 정리위원회의 방대한 조사결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물론 다른 희생자들에 대한 영장 발부를 추단할 만한 자료는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은 모두 법원이 발부한 사전 또는 사후 구속영장 없이 체포·구속되었다고 봄이 상당한바, 제1심이 재심대상판결은 그 사건에 대한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저질렀음이 증명되었다고 본 것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간다.
다. 피고인들에 대한 이 사건 재심사유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
이 사건의 핵심은 ‘피고인들은 모두 법원이 발부한 사전 또는 사후 구속영장 없이 체포·구속됨으로써, 그 사건에 대한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증명된 때로서 그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으므로 그 사실을 증명하여 재심사유로 하는 경우’에 해당하는지에 있다.
그런데 원심결정 이유에서는 이를 증명하는 구체적인 증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기록을 살펴보아도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원심은 증거에 의하여 사실 및 재심사유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제307조 제1항, 제422조, 제420조 제7호)의 기본원칙을 망각하고 그동안 일관된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 온 대법원 판례와 재판실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법관은 법률에 따라 증거와 사실에 근거하여 심판해야지 정치적 판단자나 역사적 심판자로 자처해서는 안 된다.
라. 원심이 들고 있는 간접적인 사정만으로 피고인들에 대한 이 사건 재심사유가 인정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1)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서 대상 사건 및 시대상황의 전체적인 흐름과 사건의 개괄적 내용을 정리한 부분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 할 것이지만, 법원에 제기된 구체적인 민·형사 사건을 심판할 때에는 그러한 전체 구도 속에서 개별 당사자에 관하여 주장되는 사실이 맞는지에 대하여 조사보고서 중 해당 부분을 개별적으로 검토하는 등 증거에 의하여 확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그 절차에서까지 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나 처분 내용이 법률상 ‘사실의 추정’과 같은 효력을 가지거나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증명력을 가진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조사보고서 자체로 개별 신청대상자 부분에 관하여 판단한 내용에 모순이 있거나 스스로 전제한 결정 기준에 어긋난다고 보이거나, 조사보고서에 희생자 확인이나 추정 결정의 인정 근거로 나온 유족이나 참고인의 진술 내용이 조사보고서의 사실확정과 불일치하거나, 그것이 추측이나 소문을 진술한 것인지 또는 누구로부터 전해들은 것인지 아니면 직접 목격한 것인지조차 식별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등으로 그 진술의 구체성이나 관련성 또는 증명력이 현저히 부족하여 논리와 경험칙상 조사보고서의 사실확정을 수긍하기 곤란한 점들이 있다고 보이는 경우에는, 조사관이 조사한 내용을 요약한 조사보고서의 내용만으로 사실의 존부를 판단할 것은 아니다. 그 경우에는 참고인 등의 진술 내용을 담은 정리위원회의 원시자료 등에 대한 증거조사 등을 통하여 사실의 진실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는 사법적 절차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사실심리의 자세이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 제출된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서는 피고인들을 희생자로 결정하면서 “본 사건에서 군경 당국은 법적 통제를 받지 않고 작전의 편의성이나 효율성만을 고려하여 ‘즉결처분’을 남용하였다. 이에 많은 민간인들은 반군에 협조한 혐의만으로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살당했으며, 이는 즉결처분이 사실상 학살이었음을 말해준다.”라고 기재하고 있다. 그런데 원심은 피고인들이 재판을 거쳐 판결로 사형을 선고받고 그 판결의 집행으로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렇듯 진실규명결정서의 기재 내용과 원심이 전제하고 있는 사실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위에서 본 법리에 따르면 원심과 그 전제를 달리하고 있는 진실규명결정서의 내용을 근거로 피고인들에 대한 재심사유인 사실의 존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2) 정리위원회가 인정한 앞에서 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그 내용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이 사건 피고인들의 체포·구속의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떠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군경이 피고인들을 체포·구속하였다 하더라도 과연 수사의 목적이었는지 다른 목적이었는지, 수사의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구속영장을 요하지 않는 현행범인으로 체포·구속한 것인지, 그에 따라 사후영장이 발부되었는지 등을 전혀 알 수 없다.
군법회의가 단기간 내에 다수의 사람들에 대하여 사형판결을 선고하고 판결을 집행하였다거나 구체적인 범죄사실의 내용과 증거의 요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정은 그 재판의 위헌·위법 또는 부실을 추단할 수 있는 사정이 될 수는 있어도 피고인들에 대한 체포·구속의 경위와는 무관하다.
정리위원회가 조사하였음에도 구속영장 발부를 추단할 만한 자료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경찰이 구속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피고인들을 체포·구속하였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만일 소송기록과 수사기록 등이 모두 보존되어 있는 상태에서 구속영장 발부 자료만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로 미루어 구속영장 없이 체포·구속하였다고 인정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구속영장 발부에 관한 자료뿐만 아니라 소송기록과 수사기록 전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라면 구속영장 발부를 추단할 만한 자료가 없다고 해서 불법 체포·구속되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현재 기록과 판결서가 없는 상황에서 당시 재판과 판결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이상 현재 구속영장을 찾지 못했더라도 당시 체포·구속이 되었다면 적법하게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판례의 일관된 태도에 부합한다. 기록과 판결서가 없는 것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영장이 없는 것만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3) 원심이 든 위와 같은 사정과 그 자료만으로 당시의 사법경찰관을 불법 체포·감금죄(당시의 특별공무원 직권남용죄)로 기소하고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았을 때, 그 사건을 심리하는 법관이 위와 같은 증거만으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고 유죄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증거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형사재판의 대원칙인 증거재판주의(형사소송법 제307조)에 부합한다.
(4) 그 밖에 기록을 살펴보아도 사법경찰관이 불법적으로 피고인들을 체포·감금하여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에 관하여 확정판결을 대신할 정도의 증명이 있다고 볼 수 없다.
(가) 판결집행명령서는 판결의 내용과 심사장관의 승인, 확인장관의 확인과 집행명령에 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을 뿐 피고인들에 대한 체포·구속의 경위에 관하여는 언급이 없다. 당시 일간지인 ▽▽신문은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선고된 사실을 보도하였는데, 거기에도 체포·구속의 위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나) 진실규명결정서에는 여순사건의 배경과 사건경위, 진실규명신청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와 함께 피고인들을 포함한 439명의 희생자들에 대하여 군경에 의하여 불법적으로 사살되었다는 결정을 한다는 내용이 있고, 피고인들이 군경에 의하여 끌려갔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그 내용이 대체로 여순사건과 희생자들 전반에 관한 것으로서 피고인들에 대한 체포·구속 경위에 관한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아 경찰의 직무범죄를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더구나 정리위원회는 순천지역에서 군경이 불법적으로 민간인을 사살하였다고 인정하고 피고인들을 희생자로 결정하였으며, 조사결과의 내용은 원심결정에서 판결이 선고·확정되고 그에 따라 집행이 이루어졌다고 본 것과는 달리 군경이 민간인들을 즉결처분의 방식으로 사살하였다는 취지이다. 정리위원회의 결정에 피고인들이 재판을 받고 판결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은 없으므로, 위 정리위원회의 결정을 근거로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영장 없이 체포·감금을 하였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 ‘여순사건 당시의 계엄령과 계엄법’이라는 논문이 제출되어 있으나, 이는 여순사건 당시의 상황에 대한 학자의 연구 논문으로서 피고인들이 체포·구속되는 구체적인 경위나 그 과정에서 경찰의 직무범죄가 있었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 나머지 증거들도 피고인들과 재심청구인들 등의 인적 관계에 관한 자료이거나 재심청구인들 또는 목격자들의 진술을 기재한 서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들은 이미 앞에서 본 정리위원회 진실규명결정의 기초가 된 것으로서 그 이상의 증명력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5) 다수의견이 원심의 판단을 정당하다고 하면서 근거로 들고 있는 사정들 역시 확정판결을 대신할 정도의 증명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가) 다수의견이 지적하는 진실규명결정서의 기재 내용은 여순사건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에 관한 추상적인 기술일 뿐 피고인들 또는 피고인들을 연행한 경찰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이 특정되어 있지 않다.
(나) 피고인들의 체포·감금 경위에 관한 목격자들의 진술도 기록에 나타난 그 내용만으로는 경찰의 불법 체포·감금이라는 직무상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시킨다고 볼 수 없다.
(다) 단순히 피고인들이 군경에 의하여 연행되었고 그 후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선고되고 그 집행으로 사망하였다는 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연행 과정에서 불법 체포·감금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경찰의 행위가 있었다는 증명이 없는 이상 직무상 범죄가 없었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경찰관들의 피고인들에 대한 구체적인 행위가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무범죄에 관하여 유죄판결을 할 수 없다.
마. 여순사건은 여수 제○○연대의 반란으로 시작되었으나 반란 과정뿐만 아니라 국가공권력이 이를 진압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된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 한다)이 제정되었고, 그에 따라 정리위원회가 설치되었다(과거사정리법 제1조, 제3조). 정리위원회는 2007. 4.부터 신청인 조사를 시작하여 상당한 기간 동안 참고인, 국내외의 방대한 자료와 현장을 조사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순사건을 조사하였고 2009. 1. 7. 순천지역의 민간인 희생사실에 관한 진실규명결정을 하였다. 그러한 조사결과와 결정은 존중되어야 마땅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는 피해자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과거사정리법 제34조).
그러나 그 절차·방법과 내용이 법령에 위배되는 것이어서는 아니 된다. 형사재판을 통하여 희생을 당한 피해자들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으나 그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재심절차는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증명되어야 개시할 수 있고, 재심사유에 관한 법률 해석과 그 증명의 정도에 관한 기준은 법원이 다른 사건에서 취한 태도와 일관되어야 한다. 이는 법원이 그동안 원칙으로 삼아온 형사절차법정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는 범죄의 성립에 관한 것으로 확정판결로써만 증명이 가능하고, 제422조가 적용되는 경우라도 확정판결을 대신할 수 있는 정도의 증명이 있어야 한다.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독립된 기관이 장기간에 걸쳐 조사하여 내린 결정에서도 그러한 범죄성립에 관한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법원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이를 인정할 수는 없다. 이를 쉽게 인정하게 되면 법원이 그동안 견지해 온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으로서 법적 안정성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여순사건에 대하여 인권유린과 학살 등이 있었다는 진실규명이 있고 그에 따른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졌으나, 그러한 역사적 평가가 특정 개인의 구체적인 범죄행위에 대한 증명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들이 체포·구속되었다면 그 경위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 그 체포·구속이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유죄를 인정할 정도의 증명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군경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여순사건 당시로부터 이미 70년의 세월이 지났으므로 그때 존재하였던 증거들이 멸실되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은 장기간이 경과하였다는 사정에 대하여 그로 인하여 공소시효가 완성한 경우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다른 방법에 의한 증명을 허용하고 있을 뿐 증명의 정도를 완화하고 있지는 않다(형사소송법 제422조). 따라서 설령 장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사법경찰관의 직무범죄를 증명할 충분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게 된 경우라 하더라도 법원으로서는 확정판결을 대신할 정도의 증명이 없는 이상 증거부족을 이유로 재심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앞에서 본 형사소송의 기본원칙과 재심절차, 재심사유에 관한 형사소송법의 규정과 이념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법원이 그동안 취한 태도와도 일관된다.
이 사건에서 앞에서 본 것과 같은 자료에 기초하여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에 관한 증명이 있다고 보는 것은 형사절차에서 원칙과 예외에 관한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앞으로 재심제도의 운영에 적지 않은 혼란을 초래할 것이 우려된다.
바. 따라서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사법경찰관이 구속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피고인들을 체포·구속하였다고 인정한 것은 증거가 아닌 막연한 추측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잘못된 전제에서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에 관한 증명이 있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1항, 제422조, 제420조 제7호 등의 법령을 위반하고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현저히 반하는 것으로서 비록 사실심의 전권인 사실인정의 재량을 존중한다 하더라도 법령을 위반하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현저하게 벗어나 위법하여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를 지적하는 검사의 재항고이유 주장은 옳다.
그러므로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여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취지를 밝힌다.
6.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이기택의 반대의견
이 사건에서 재심대상 확정판결은 존재한다고 볼 수 없고, 설령 판결이 존재한다고 보더라도 재심은 가능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타당하지도 아니하므로 다수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가. 사실적 의미에서 판결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
(1) 다수의견은 판결 내용이 기재된 ‘판결집행명령서’, 판결 선고에 관한 언론보도, 유족의 진술과 관련 자료에 의한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서 등에 의하면 1948. 11. 14. 이 사건 재판이 있었고, 같은 달 말경 사형판결이 집행되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2) 그러나 아래와 같은 사실과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재심개시결정의 적법성 내지 타당성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과연 이 사건에서 재판이 실제로 있기는 있었는지, 피고인들이 사형판결의 집행으로 사망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우선 유족들의 진술에 의하면 이 사건 판결이 있었던 사실 내지 위 판결에 의한 사형집행 사실을 단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재판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피고인 1의 경우, 피고인 1의 체포·감금 시기에 관하여 피고인 1의 처 공소외 3은 1948. 10. 26.경이라고 진술하고, 피고인 1의 처남 공소외 4는 1948. 10. 25.경이라고 진술하며, 피고인 1의 딸 재심청구인 1은 1948. 11. 20.경이라고 진술하였다. 또한 피고인 1의 사망 시기에 관하여도 공소외 4는 1948. 10. 30.경이라고 진술하고, 재심청구인 1은 1948. 11. 30.경이라고 진술하며, 공소외 3은 피고인 1의 기일이 음력 10. 29.이라고 진술하였다. 사망 장소에 관하여도 재심청구인 1은 순천시 ◁◁동 뒷산이라고 진술하고, 공소외 3은 현 ▷▷중학교♤♤동 부근이라고 진술하며, 공소외 4는 공동묘지라고 진술하였는데, 이들이 과연 같은 장소를 지목하고 있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공소외 3은 남편 피고인 1이 재판 절차도 없이 총살당하였다고 분명히 진술한 바 있다. 한편 피고인 2의 아들 재심청구인 2는 경찰들이 피고인 2를 총살하였다고 진술하였고, 피고인 3의 형인 재심청구인 3도 재판은 열리지 않았고 경찰들이 피고인 3을 총살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이에 정리위원회는 위와 같은 유족들의 진술과 관련 자료를 검토하여 이 사건 피고인들이 모두 재판 없이 사살당하였다는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물론 위 유족들의 진술은 이 사건 발생으로부터 매우 오랜 시일이 흐른 뒤에 이루어졌으므로 일부 기억의 소실 또는 착오가 있을 수 있고, 진술들이 서로 달라 보이는 것은 단순한 오기이거나 양력과 음력의 차이 또는 지역명의 속칭과 정확한 행정구역명의 차이로 인한 결과일 수 있으며, 당시의 혼란상을 감안할 때 경찰이 사형판결을 집행하였을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떻든 ‘판결집행명령서’가 발견되기 전 이 사건에 관한 관련자들의 진술과 정리위원회의 조사결과는 모두 위와 같이 ‘피고인들이 재판 없이 집단적으로 사살당하였다’는 결론으로 모아졌다는 점이다. 과연 이 사건에서 재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할 만한 근거로는 ‘판결집행명령서’와 관련 언론보도만이 남는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 근본적으로 그 ‘판결집행명령서’의 기재 자체가 허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즉 실제 재판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정식으로 재판을 거친 것처럼 외형만 갖추어 놓은 것이거나 일부 실제 재판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재판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까지 함께 포함하여 기재해 두었을 가능성이 있다. ‘판결집행명령서’의 기재 자체로도 하루에 수백 명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는 것인데, 의도하지 않은 오류 내지 오기가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당시의 상황, 즉 아직 국가의 체계가 완비되지 못한 채 계엄법도 마련되지 않았고 군법회의의 명확한 근거도 없었으며 민간인에 대한 재판권 여부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소위 즉결처형이 난무하던 상황을 고려하면 ‘터무니없는 의심’이 아니라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다. 한편 후자의 경우 실제 ▽▽신문의 1948. 11. 17.자 해당 언론보도는 “심리를 담당한 국방부 법무관 공소외 2 중령은 15일 다음과 같은 판결 결과를 발표하였다. (중략) 폭도혐의자 458명 중 양민으로 판명되어 석방된 자 190명을 제외한 268명에 대한 고등군법회의 결과는 사형 102명, 20년 징역 79명, 5년 징역 75명, 무죄석방 12명”이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위 언론보도는 당시 군법회의 측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보도한 것에 불과하여 별개의 독립한 증거라고 보기 어렵다. 즉 위 보도는 직접 판결의 존재와 내용을 확인한 결과가 아니므로 증거가치의 측면에서 보자면 ‘판결집행명령서’와 사실상 같은 증거에 불과한 것이다.
(3) 물론 이 부분의 원심판단은 일응 사실인정의 문제이고, 따라서 자유심증주의가 적용되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유심증주의라는 것이 아무런 근거 없이 모순된 증거들 중 일부를 임의로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는 없다. 어느 한쪽의 증거를 취신하기 위하여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배척하는 증거에 관하여도 최소한의 근거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법리에서 보면 이 사건 판결의 존재 여부에 관한 판단은 결국 유족들의 진술을 채택하여 판결의 존재를 부정할 것인지, ‘판결집행명령서’의 기재를 채택하여 판결의 존재를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가 된다. 여기서 다수의견은 너무 쉽게 유족들의 진술을 배척하고 ‘판결집행명령서’의 기재를 취신하고 있는데, 그러한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다수의견의 사실인정은 정리위원회의 최종 조사결과인 진실규명결정서가 발표된 이후 뒤늦게 발견되어 그 출처와 신뢰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판결집행명령서’에만 기대어 별다른 근거도 없이 특별법에 의한 강력하고 포괄적인 권한을 통하여 오랜 기간 과거사의 사실확정 문제를 전담해 온 정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다수의견의 속단에 동의하기 어렵다.
나. 규범적 의미에서 판결이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있는지
(1) 다수의견은 판결이 사실적으로 존재한다면 당연히 규범적 차원에서도 판결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2) 그러나 설령 사실적 의미에서 재판이 있었다고 인정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규범적 의미에서도 재판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외형상 재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법적 의미에서 재판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종래 대법원은 주주총회결의 등에 관하여 외형상 주주총회로서 소집·개최되어 결의가 성립하였다 하더라도 그 소집절차나 결의방법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법률상 부존재로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왔다(대법원 1996. 6. 11. 선고 95다13982 판결 등 참조). 판결의 존부에 관하여도 위와 같은 법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즉 판결의 절차적 하자가 매우 중대하다면 그러한 판결은 더 이상 판결로서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규범적 의미에서의 재판, 특히 형사재판이 있었다고 하려면 재판권의 존재, 법관의 자격, 공소의 제기와 공소사실의 특정, 피고인의 주장과 변소, 증거에 의한 사실인정과 판단, 재판의 성립과 선고 등 일련의 과정에서 최소한의 요건과 절차가 갖추어져야 한다. 이를 인정할 수 없는 재판은 그 당부를 논하기 이전에 재판으로서 성립하여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재판권의 존재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법관이라고 칭하는 자가 공소제기도 없는 사안에 관하여 국가의 사법작용으로서 재판을 한다는 명분으로 수백 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변명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아무런 증거조사 없이 즉석에서 일괄적으로 유죄로 판단하여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면 이는 ‘부당한 재판’이 아니라 애당초 도저히 ‘재판’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3) 물론 위와 같은 상황은 현재로서는 사실상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반드시 위와 같은 상황이 절대로 없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 사건의 경우, 결론적으로 재판이 있었다고 보든 없었다고 보든, 실질적으로 위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수의견이 판결로서 인정하고 있는 이 사건 재판에는 당시 계엄선포의 합헌성 내지 적법성, 일제 계엄령의 규범력, 군법회의의 설치근거 및 민간인에 대한 재판권 여부, 법무관 1인에 의한 단심 사형판결의 문제, 공소제기의 존부와 공소사실의 특정 여부, 공판의 개정 및 증거조사의 실시 여부, 판결서의 작성 여부 및 판결의 선고방법 등에 관하여 수많은 의문이 있다. 이러한 상황은 판결의 당연한 성립과 존재를 전제로 재심을 통한 사후시정을 논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사법(司法)이란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 독립적 지위를 가진 중립적 기관이 무엇이 법인가를 인식하고 선언함으로써 법질서의 유지와 법적 평화에 기여하는 국가작용이다. 그런데 이 사건 ‘판결집행명령서’에는 위와 같은 재판으로서의 요건과 절차, 판단의 실체 등에 관한 아무런 정보가 없고, 그 밖에 어디에도 위 사항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 위와 같은 최소한의 요건과 절차가 당연히 준수되었을 것이라고 추단할 만한 그 어떤 근거도 없다. 따라서 위 ‘판결집행명령서’에 기재된 바와 같은 재판이 실제로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규범적 의미에서 재판으로서 성립·존재한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다.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이 가능한지
(1) 다수의견은 일응 판결(물론 유죄의 확정판결을 전제로 한다. 이하 같다)이 있었다면 모두 재심이 가능하다고 보는 전제에 있다.
(2) 그러나 재심은 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에 대한 비상구제절차로서, 재심이 개시되면 법원은 그 심급에 따라 다시 심판하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438조). 즉 재심은 판결의 중대한 하자를 재심판을 통하여 시정하는 제도이며, 개시만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재심은 법령위반에 관한 비상상고와 달리 사실오인에 관한 것이고, 법령에 위반된 부분만 파기할 수 있는 비상상고와 달리 전체로서의 유·무죄 판단을 다시 하여야 한다.
한편 근대 이후 형사재판은 규문주의를 탈피하여 탄핵주의를 취하고 있으므로 불고불리를 원칙으로 한다. 공소사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애당초 형사재판 자체가 불가능하고, 소추 내지 기소가 없었다면 설령 해당 사안에 대하여 무언가 국가기관의 유권적 판단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형사재판이 아니다.
위와 같은 점들을 종합하면 재심의 대상이 되는 형사판결은 최소한 공소사실이 특정된 사건을 전제로 한다고 보아야 한다. 공소사실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사건에 대하여 재심을 개시하게 되면 재심본안에서는 심판의 대상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소기각판결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 참조). 이는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함으로써 중대한 사실오인을 시정한다는 재심제도의 취지와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위와 같은 재심개시는 사실상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져 있는 재판을 다시 하라는 것이 되는데 이러한 점 역시 재판의 본질과 배치된다.
이에 대하여 다수의견의 입장에서는 이 사건 ‘판결집행명령서’에 표시된 구 형법 제77조 제1항의 “정부를 전복하거나 국토를 참절하거나 기타 조헌(朝憲)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하여 폭동을 한 자는 내란의 죄로 하여 좌의 구별에 따라서 처단한다.”라는 규정을 참조하여 예컨대 ‘피고인들은 1948. 10.경 순천지역 일원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거나 국토를 참절하거나 기타 조헌(朝憲)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하였다.’라고 공소사실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막연한 공소사실 특정은 허용될 수 없다. 이는 ‘피고인은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였다.’라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절도죄 형사재판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다수의견의 시각에서는 ‘형사소송법상 재심절차는 재심개시절차와 재심심판절차로 구별되는 것이므로, 재심개시절차에서는 형사소송법에 규정하고 있는 재심사유가 있는지 여부만을 판단하여야 하고, 나아가 재심사유가 재심대상판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가의 실체적 사유는 고려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대법원 2008. 4. 24.자 2008모77 결정 등에 근거하여 형사재심의 개시 단계에서 심판 단계를 고려할 필요는 없고 고려하여서도 안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위 법리는 재심개시 단계에서 본안심판의 결론을 예상하여 그에 따라 재심개시 여부를 결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본안심판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재심을 개시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것은 아니다. 만일 후자와 같이 해석하게 되면 예컨대 과거 일제 강점기 또는 그보다 더 이른 조선 시대 판결이라고 하여 그에 대한 재심이 반드시 불가능할 것도 없다. 판결서도 없고, 공소사실도 알 수 없지만 어떤 법에 의하여 어떤 죄목으로 유죄판결을 받아 처벌된 것인지만 확인된다면, 아니 그런 것조차 모른다 하더라도 어떻든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정만 인정된다면 그에 대한 재심을 불허할 근거가 없을 것이다. 사건번호, 판결의 이유와 주문 등조차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이유가 없다. 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한 재심은 당연히 허용된다고 본다면 위와 같은 경우들에 대하여 차별성을 인정할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요컨대, 공소사실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사건에 대하여, 즉 형사재판 자체가 불가능한 사건에 대하여 재심을 개시하는 것은 재심제도의 근본취지와 형사재판의 기본전제에 비추어 부당하다. 비록 외형적·형식적으로 ‘유죄의 확정판결’의 존재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다시 심리·판단할 대상을 알 수 없는 사건에 대하여 재심을 개시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경우 법원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재심을 개시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재심은 허용될 수 없음을 선언하여야 한다. 이 사건 재심을 개시하는 것은 사법의 본질에 배치된다고 보아야 한다.
(3) 이 사건은 단순히 판결은 분명히 있었는데 단지 그 판결서가 없는 경우에 관한 사안이 아니다. 판결과 판결서는 별개인 만큼 설령 판결서가 없더라도 판결의 존재와 내용이 확인된다면 재심을 허용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의견 역시 이러한 해석에 반대하지 않는다. 반대의견이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판결서가 없고 그 밖에 다른 자료들을 통하여도 그 판결의 전제인 공소사실과 시정의 대상인 판단내용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 경우 과연 재심이 가능한지, 그러한 재심을 허용할 것인지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재심의 개시 여부는 오로지 재심사유의 존부에 따라 결정되고, 재심을 허용한다는 것은 과거의 판결이 부당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재심을 불허한다는 것은 과거의 판결이 정당하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모두 재심대상판결이 판결로서 성립·존재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는 것이다. 재심대상판결이 판결로서 성립·존재하지 않는다면 재심사유의 존부를 논할 수 없고, 재심의 허용 여부가 과거 판결의 당부를 의미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재심을 불허하는 것은 과거 판결이 정당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심을 허용하는 것이 허울뿐인 재판을 판결로서 성립·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된다.
(4) 한편 이 사건과 같이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은 사건에 관해서는 재심본안에서의 유·무죄 판단 이전에 재심사유의 판단부터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재판이란 청구에 대한 답변이고, 형사재판은 공소제기에 대한 응답이며, 유죄판결은 증거에 의한 범죄사실의 인정이다(물론 그 범죄사실에 대한 법령의 적용 역시 포함된다). 재심은 위와 같은 유죄판결의 증거와 범죄사실에 관한 중대한 하자를 이유로 한다.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재심사유로서 원판결의 증거 된 서류 또는 증거물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위조 또는 변조인 것이 증명된 때(제1호), 원판결의 증거 된 증언, 감정, 통역 또는 번역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허위인 것이 증명된 때(제2호), 무고로 인하여 유죄의 선고를 받은 경우에 그 무고의 죄가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제3호), 원판결의 증거 된 재판이 확정재판에 의하여 변경된 때(제4호), 유죄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하여 무죄 또는 면소를, 형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하여 형의 면제 또는 원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경한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제5호), 저작권, 특허권, 실용신안권, 의장권 또는 상표권을 침해한 죄로 유죄의 선고를 받은 사건에 관하여 그 권리에 대한 무효의 심결 또는 무효의 판결이 확정된 때(제6호), 원판결, 전심판결 또는 그 판결의 기초 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제7호)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모두 범죄사실의 인정 자체에 중대한 하자가 있거나(제3, 5, 6호), 범죄사실의 인정에 사용된 증거에 중대한 하자가 있거나(제1, 2, 4호), 위 과정 전반에 사실오인의 개입을 의심할 만한 중대한 절차상 위법으로서 소위 ‘공무원의 직무범죄’가 있는 경우(제7호)이다.
그런데 공소장도 없고 판결서도 없다면, 그래서 공소사실도 알 수 없고 범죄사실도 알 수 없으며 어떤 증거가 어떤 사실인정에 사용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면, 문제 되는 재심사유와 해당 확정판결 사이의 관련성을 전혀 알 수 없으므로 재심사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이는 제7호 ‘공무원의 직무범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특정 공무원이 특정 피고인에게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를 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재심이 문제 되는 당해 사건과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한 재심사유가 될 수는 없다. 예컨대, 서울에서 특정 범죄혐의에 대하여 수사·재판한 사건에 관하여 부산에서 있었던 다른 범죄혐의에 대한 수사·재판의 위법성을 이유로 재심을 허용할 수는 없다. 즉 공소사실, 증거, 범죄사실 등 그 실체를 전혀 알 수 없는 재판에 관해서는 애당초 재심사유의 존부 자체를 논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이 사건에서 군경들이 피고인들을 구속영장 발부 없이 체포·감금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와 같은 체포·감금이 어떤 혐의에 관한 것이었는지, 다수의견이 말하는 이 사건 판결이 위 혐의에 관한 것이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이상 이 사건에서 재심사유의 존재를 인정할 수는 없고, 엄밀히 표현하자면 재심사유에 대한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점에서도 다수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
라. 이 사건 재심을 허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1) 다수의견은 이 사건 피고인 등 순천지역 여순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한 구제를 위하여 재심을 허용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2) 그러나 이 사건에서 재심을 허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희생자들에 대한 충분한 구제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선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재심을 개시한다 하더라도 공소사실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이상 재심본안에서의 결론은 무죄판결이 아닌 공소기각판결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하는 공소기각판결만으로 피고인들의 명예가 회복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대의견에 의하면 이 사건 가해자들은 국가의 불법적 집단학살에 관여한 범죄자이고, 희생자들은 그와 같은 집단학살의 무고한 피해자이다. 그러나 다수의견에 의하면 이 사건 가해자들은 위법하지만 어디까지나 재판과 그에 따른 집행을 한 것이고, 희생자들은 과거 그와 같은 유죄판결의 집행으로 사망하였는데 현재로서는 그들의 혐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또한 이 사건 재심을 통하여 형사보상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일정한 경우 공소기각의 재판에 관하여도 형사보상을 인정하고 있기는 하나(제26조 제1항 제1호), 이 사건이 “공소기각의 재판을 할 만한 사유가 없었더라면 무죄재판을 받을 만한 현저한 사유가 있었을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이 사건에 관한 국가배상 민사소송은 이미 ‘피고인들이 재판 없이 사살당하였다’는 사실인정에 기초하여 유족들의 일부 승소로 확정되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2. 11. 30. 선고 2012가합500464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3. 10. 10. 선고 2012나106333 판결, 대법원 2014. 1. 29.자 2013다214987 판결). 이 사건에서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하여 향후 추가적인 국가배상에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나아가 이 사건 재심을 허용한다 하더라도 재심본안에서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구체적인 공소사실이 전제되지 않는 한 공소유지와 재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3) 위와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이 사건 재심을 개시하는 것은 당초의 의도 내지 취지와 달리 희생자들에 대한 현실적인 구제가 되지 못할 수 있다. 물론 이 사건 재심을 허용할 경우 그 자체로 일단 피고인들은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라는 허물을 벗게 된다. 그러나 재심본안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규명 등에 한계가 있어 공소기각판결이 선고·확정될 경우 오히려 추가적인 진상규명과 이에 기초한 보상·배상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마. 결론
이 사건의 실체는 ‘사법작용을 가장한 국가의 무법적 집단학살’이다. 설령 재판이라는 외형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들이 국가의 불법적 행위에 따라 무고하게 희생된 것은 분명하고, 따라서 이에 대한 국가의 사죄와 보상은 반드시 필요하다. 반대의견은 이러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사건 희생자들 및 그 유족들을 어떤 절차를 통하여 어떤 방식으로 구제할 것인지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함을 지적하고, 위 구제방법으로 과연 재심이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무고한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을 위하여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무법적 집단학살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충분한 보상·배상 및 명예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이다. 법원의 재심은 사법의 본질과 법원의 책무, 재심의 법리에 배치되어 타당하지 않음은 물론, 과거사의 정리에도 바람직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여야 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취지를 밝힌다.
7.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김상환의 보충의견
다수의견의 논거를 보충하고 반대의견의 비판에 관하여 몇 가지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가.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하고 재심의 대상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1)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이었던 피고인들이 재판을 받고 사형판결을 선고받아 집행된 사실은 당시의 언론보도, 판결집행명령서 등으로 충분히 인정된다.
반대의견의 표현대로 여순사건 당시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은 ‘사법작용을 가장한 국가의 무법적 집단학살’이자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된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 우리는 공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국가공권력이 재판을 빙자하여 자행한 학살’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구제방법은 무엇인가?
피고인들과 그 유족들이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재심을 청구하여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 여기에서 법원이 그 재판은 ‘사법작용을 가장한 국가의 무법적 집단학살’이니 규범적으로 재판이 없는 것이고 재심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 구제절차를 진행할 기회마저 박탈해서는 안 된다. 법원이 현행법에 따라 재심청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피고인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덜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하는 데 무용하다고 할 수는 없다.
피고인들과 그 유족들을 구제할 수 있는 다른 특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재심은 최선의 구제방법이 아니라거나 특별법으로 구제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이 사건 재심청구를 거절할 수는 없다. 그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특별법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추진하는 것은 입법의 영역에 속하고 현행법에 따라 재심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사법의 영역에 속한다. 더 나은 입법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사법의 역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제1심과 원심은 유족들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이는 판단을 하였다. 검사가 재항고를 하였으나, 반대의견이 든 이유를 검사는 전혀 주장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검사가 주장하지도 않는 이유를 들어 하급심의 일치된 판단을 뒤집고 재심청구를 기각하는 것이 과연 반대의견이 표현한 대로 재심의 법리에 부합하고 과거사의 정리에 바람직한 해결책인지, 재심을 개시하면 당초의 의도나 취지와 다른 부정적인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인지 의문이다.
(2) 대법원은 국가공권력의 위헌·위법한 작용으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지키고 구제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개시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형사소송법은 재심의 대상을 ‘유죄의 확정판결’이라고만 규정하고 있다(제420조). 그 내용이나 확정시기 등을 따지지 않는다. 공소사실이 특정되어 있을 것을 요건으로 하지도 않는다. 재심이 피고인이나 재심청구인에게 어떠한 실익이 있는지도 묻지 않는다. 재심심판을 거친 후 유죄판결을 할 때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이 적용될 뿐이다(형사소송법 제439조).
무엇보다도 ‘유죄의 확정판결’이 학살에 이용되었다고 하여 이를 배제한다는 명문의 규정이 없다. 현재까지 그러한 해석이나 판례도 없다.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사법작용을 가장한 국가의 무법적 집단학살’이라는 이유로 재심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결론은 오판을 바로잡고 이를 통해 피고인의 권리를 구제한다는 재심제도의 본질에 반한다.
(3) 형사보상절차나 국가배상절차는 재심과는 전혀 별개의 재판절차이고, 재심을 전제로 하는 절차도 아니다. 그리고 당사자의 청구가 있어야 이 절차들이 진행될 수 있다. 당사자가 재심을 청구하였고 제1심과 원심이 이를 인용하여 검사가 재항고를 한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재판권도 없는 형사보상이나 국가배상책임의 요건을 판단하여 이 사건의 당부를 따질 수는 없다.
재심이 개시되면 재심청구를 받은 하급심법원은 사건에 대하여 다시 심리하여 판결을 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438조 제1항). 재심을 개시하기도 전에 유죄판결을 할 것인지, 공소기각판결을 할 것인지 미리 판단할 수는 없다. 재심 심판절차에서 새로운 증거조사가 얼마든지 가능하고 공소장변경 역시 가능하다. 그리고 그 절차를 거치는 동안 어떠한 추가 증거가 제출될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재심청구를 인용한 원심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심리하는 대법원이 재심의 심판권도 없는 상태에서 재심 심판절차를 거친 이후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을 미리 예측하여 재심의 대상인지를 가릴 일도 아니다.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은 유죄의 확정판결로서 재심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형사소송법 규정과 법리에 반할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일반적 법감정에도 맞지 않는다.
이 사건에 대해 형사소송법에 따라서 재심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해야 한다.
나. 원심이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가 있다고 인정한 제1심을 유지한 것에 형사소송법 제415조에서 정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
(1) 형사소송법 제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라고 정하여 자유심증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설령 증거의 증명력에 대한 판단과 증거취사에 관한 원심의 판단에 그와 달리 볼 여지가 있는 경우에도 원심의 판단이 논리법칙이나 경험법칙에 따른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한 형사소송법 제415조가 재항고이유로 정하고 있는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없다(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7도1755 판결 등 참조).
자유심증주의의 규범적 기준이 되는 경험법칙은 반드시 법규범에 이를 정도의 보편타당성이나 자연법칙에 이를 정도의 필연성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법칙의 선택과 내용에 대한 판단은 법관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원심의 판단은 이러한 법리에 따른 것으로서 검사의 재항고를 받아들여 원심을 파기할 정도로 법령을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다.
(2) 이러한 다수의견이 타당함은 다음과 같은 사정을 보면 더욱 분명하다.
(가) 진실규명결정서에는 사법경찰관이 피고인들을 구속영장 없이 불법 체포·감금하여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다고 명시적으로 기재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는 정리위원회의 조사목적이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들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희생되었는지에 관하여 진실규명을 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희생자들의 사망 여부’와 ‘국가공권력에 의한 사망 여부’가 쟁점이었고, 재심사유의 유무는 쟁점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나) 피고인들의 유족들은 정리위원회의 조사 당시 피고인들이 재판을 받았다는 진술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군경이 피고인들을 연행해 간 후 가족들에게 아무런 통지를 하지 않아 가족들로서는 연행 이후 절차에 관하여 알지 못하였기 때문일 수 있다.
정리위원회는 위와 같은 참고인들의 진술을 기초로 하여 피고인들을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이 아닌 집단학살의 희생자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리위원회의 조사 당시 판결집행명령서와 ▽▽신문 기사가 제출되었다면 피고인들이 확정판결을 받아 사형을 당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했을 수 있다. 이는 정리위원회가 여수지역 여순사건의 일부 신청인에 대하여 호남지구계엄사령부 고등군법회의 명령 제5호, 제13호 등을 확인한 후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으로 결정한 것에서 충분히 추단할 수 있다.
따라서 정리위원회가 피고인들을 희생자로 인정하는 결정을 하였다고 해서 그 기재 자체에 어떠한 모순이 있거나 스스로 전제한 결정 기준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 진실규명결정서에 기재된 여순사건의 배경과 전개과정, 민간인들에 대한 군경의 연행과 희생 경위, 피고인들의 연행 경위 등에 관한 기재에 대하여 충분히 증명력을 인정할 수 있다. 제1심과 원심도 원시자료와 새로 제출된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여 진실규명결정서의 증명력을 인정하였고 이는 종래의 판례에 비추어 보더라도 적법한 조치이다.
(다) 우리나라에 영장주의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48. 4. 1. 시행된 구 형사소송법, 1948. 7. 17. 시행된 제헌헌법이다. 여순사건은 그로부터 불과 수개월밖에 지나지 않아 국가행정의 기틀이 미처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진실규명결정서에는 당시 군경이 민간인을 연행한 모습에 관하여 ‘무차별적으로’, ‘일정한 심사나 조사 없이’, ‘불법적인 고문’ 등 영장 없는 불법 체포·감금 사실을 추단할 수 있는 기재가 여러 곳에 있다. 여순사건 직전 순천지역은 좌우익 갈등의 정도가 심하였다. 여순사건 초기에는 반란군들이 좌우익 갈등의 보복 차원에서 경찰과 시민들을 총살하기도 했다. 진압군이 순천지역을 탈환한 후에는 군경에 의하여 보복에 대한 보복이 이어졌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여순사건 당시 법관이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고 볼 만한 자료나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
(라) 공소외 4(출생연도 1 생략)는 정리위원회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피고인 1의 연행에 관하여 ‘군인과 경찰이 시민들을 확실한 근거도 없이 불법 체포하여 생명과 재산을 약탈하였다.’고 기재하였다. 공소외 3(출생연도 2 생략)은 ‘피고인 1이 △△국 기관사로 출근을 하였는데 전 직원이 무릎을 꿇고 머리 위로 양손을 깍지 낀 상태에서 총에 겨눠졌고 경찰, 진압군인, 우익요원을 앞세워 손가락질로 호명(좌익계열의 모함, 밀고 등)하여 잡아 가둔 후 밥도 주지 않고 굶기고 온갖 고문을 하였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제1심에 제출하였다. 재심청구인 3(출생연도 3 생략)은 ‘피고인 3이 ☆☆리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고 농사일만 하던 평범한 농민이었는데 불법으로 체포된 후 학살당하였다. 마을에 있는데 경찰과 동행한 사람이 손가락질을 하여 지목당하자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마을 주민이 좌익혐의자라고 손가락질을 하면 경찰은 무조건 체포해갔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제1심에 제출하였다. 재심청구인 2(출생연도 4 생략), 공소외 5(출생연도 5 생략)는 ‘군경 진압군이 총을 쏘고 고함을 지르며 마을에 들어와 모든 사람을 데리고 갔다. 피고인 2의 가슴에 총을 대고 이름을 물은 후 강제로 잡아 갔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제1심에 제출하였다.
이러한 진술 내용은 진실규명결정서를 비롯한 다른 자료들과 함께 피고인들이 법관의 사전 또는 사후 구속영장 없이 체포·구속되었다고 인정한 제1심과 원심의 판단을 뒷받침한다.
(마) 원심결정에서 인정하였듯이 피고인들은 직장에 출근하던 중 또는 주거지에서 거주하던 중 연행되었다. 이러한 경우 현행범 등 사전 구속영장의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을 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다수의견에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군경이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연행하고 그중 일부를 즉결처분의 대상으로 분류하고 일부는 군법회의 회부 대상으로 분류하였으며 나머지는 석방하였다. 이와 같이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한 후에 대상자를 분류한 방식에 비추어 보더라도 법관의 사전 또는 사후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3)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에 관한 증명은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것으로서 범죄사실의 존재가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대법원 1994. 7. 14.자 93모66 결정 등 참조).
형사소송법 제422조에서 정한 ‘확정판결에 대신하는 증명’은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은 사법경찰관이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에 따라서 영장 없이 피고인을 체포·구금한 사안에서 사법경찰관에게 불법 체포·감금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는 경우에도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에 관한 증명이 있다고 인정하였다(대법원 2018. 5. 2.자 2015모3243 결정). 위 사건에서 불법 체포·감금죄의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더라도 당시 피고인을 체포·감금한 사법경찰관은 법령에 따른 행위를 한 것이어서 불법 체포·감금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게 되어 사법경찰관에게 불법 체포·감금죄의 유죄판결을 할 수 없는 경우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재심제도의 목적과 이념,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취지 등을 고려하여 형사소송법 제422조에서 정한 확정판결에 대신하는 증명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헌법 제27조 제4항에서 정한 ‘무죄추정의 원칙’,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에서 정한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는 원칙’은 형사피고인의 인권과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원칙이다. 위와 같은 원칙은 검사의 기소에 따라 피고인이 재판을 받는 형사소송절차에서 엄격하게 관철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재심절차에서는 이러한 원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재심은 형사재판에서 오판을 받은 억울한 피고인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이다. 일반적인 형사재판절차에서 형사소송원칙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오판을 받은 사람에 대한 재심절차에서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증명’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재심제도의 목적과 이념,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취지 등을 고려하여 합목적적으로 해석·적용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사피고인의 인권과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원칙이 오히려 형사피고인의 권리구제를 가로막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재심을 청구한 피고인의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실제로 직무상 범죄로 기소가 되어 재판을 받는 경우에 사법경찰관의 형사재판에서는 위 원칙들이 충실히 보장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재판 결과에 따라서 판결을 하여야 한다.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피고인인 사법경찰관의 인권과 방어권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직무상 범죄를 증명하는 내용의 확정판결이라면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재심사유의 증명이 있다고 인정되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 증명이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422조의 ‘확정판결에 대신하는 증명’은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이유가 매우 다양하므로 어떠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인 사건에서 재심제도의 목적과 이념,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취지 등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위 대법원 2018. 5. 2.자 2015모3243 결정도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앞으로도 그 법리는 존중되어야 한다.
(4) 이 사건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대량학살 또는 집단적 폭력’ 사건이다. 이러한 학살과 폭력은 국가공권력이 재판을 빙자하여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피고인들에게는 재판을 통하여 형성된 외관, 즉 ‘반란군에 협조한 반국가적 범죄자’라는 씻기지 않은 낙인이 새겨졌다. 그 유족들 또한 반국가적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고 있다. 이러한 낙인과 불명예로 말미암아 피고인들과 그 유족들이 적극적으로 이를 드러내어 국가공무원의 불법행위를 증명할 증거를 수집하고 자신들의 권리구제 수단을 강구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차별과 멸시를 피하기 위하여 오랜 세월 이를 숨긴 채 그 억울함을 가슴으로 삭이며 지내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비로소 과거사정리법이 제정되고 정리위원회가 설치되어 진실규명 조사를 하게 되어 조금이나마 그 진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미 장기간의 세월이 흘러 물적 증거를 확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당시 상황을 목격한 주변 인물들의 기억과 그에 기초한 진술이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될 수밖에 없다.
무고한 민간인들이 짧은 시간 동안 대량적·집단적으로 살해된 사건에 대하여 1명 또는 소수의 사람이 체포·감금되어 재판을 받은 사건과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불합리하다.
형사소송법 제422조, 제420조 제7호는 사법경찰관의 직무상 범죄가 있은 때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공소시효가 완성하여 그 범죄를 확정판결로 증명할 수 없는 경우에도 다른 방법으로 직무상 범죄사실을 증명하여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소시효가 완성하여 수사기관이 범죄수사를 더 이상 하지 않고, 무고한 민간인들이 짧은 시간 국가공권력에 의하여 대량적·집단적으로 살해된 사건이며 발생한 때부터 70년이 지난 사건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범죄혐의를 수사하여 공소를 제기하고 적극적으로 공소유지를 하여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와 동일한 수준의 증명을 피고인들의 유족인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갖출 수 없게 된 요건을 요구하며 재심사유를 부정하는 것이 되어 부당하다(대법원 2018. 5. 2.자 2015모3243 결정 참조).
(5) 증거의 취사선택과 증명력에 대한 판단은 사실심의 전권이다(형사소송법 제307조, 제308조).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제기된 재심사건에서 사실심 법원은 현재까지 존재하는 객관적인 증거들과 당시 상황을 목격한 주변 인물들의 기억의 편린 속에 남아 있는 증거들을 모두 종합하여 재판을 할 수밖에 없다. 재심의 청구를 받은 법원은 재심청구 이유의 유무를 판단함에 필요한 경우에는 사실을 조사할 수 있으며(형사소송법 제37조 제3항), 공판절차에 적용되는 엄격한 증거조사 방식에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심 법원이 이러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조사하여 사실을 인정한 경우에는 사실인정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대법원은 이를 토대로 재판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볼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사후심으로서 법률심인 대법원이 원심의 사실인정을 뒤집어야 할 정도는 아니다.
(6) 재심제도는 법적 안정성을 후퇴시키고 구체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이념으로 한다(대법원 2018. 5. 2.자 2015모3243 결정 등 참조). 국가공권력에 의한 재판을 빙자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에 대하여 법적 안정성만을 강조하여 구체적 정의를 희생할 수는 없다. 이 사건의 경우 재심제도의 이념에 충실하게 법적 안정성에서 한발 조금 물러서서 피고인들과 그 유족들을 구제해야 한다. 그것이 법원의 역할이고 주권자인 국민이 최종적인 권리구제 기관으로서 대법원에 요구하는 모습이다.
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스러져간 영혼은 그 누가 달랠 수 있겠는가? 이 결정이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 얼마나 위로가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그 청구의 당부를 엄정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위로를 얻을 수도 있고 실망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우리가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도 법에 호소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법률에 충실한 판단을 하는 것이 그들이 기댄 국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사법부가 할 최소한의 도리이다.
이상과 같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밝힌다.
대법원장 김명수(재판장) 조희대 권순일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주심) 박정화 안철상 민유숙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 김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