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2016. 6. 30. 2013헌바27 [합헌]
출처
헌법재판소
군사법원법 제348조의2 위헌소원 등
(2016. 6. 30. 2013헌바27)
판시사항
1. 위임입법이 대법원규칙인 경우에도 수권법률에서 포괄위임금지원칙을 준수하여야 하는지 여부(적극)
2. 컴퓨터용디스크 등의 증거조사방식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도록 한 형사소송법(2007. 6. 1. 법률 제8496호로 개정된 것) 제292조의3이 포괄위임금지원칙을 위반하는지 여부(소극)
결정요지
1. 대법원은 헌법 제108조에 근거하여 입법권의 위임을 받아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할 것이고, 헌법 제75조에 근거한 포괄위임금지원칙은 법률에 이미 하위법규에 규정될 내용 및 범위의 기본사항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당해 법률로부터 하위법규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하므로, 위임입법이 대법원규칙인 경우에도 수권법률에서 이 원칙을 준수하여야 함은 마찬가지이다.
2.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다양한 증거가 발생되는 현실에서 정보저장매체의 특성을 반영하여 일일이 법률규정에서 증거조사방식을 규율하기란 사실상 매우 곤란하며, 컴퓨터용디스크 등에 대한 증거조사방식은 기술적이고 전문적이며 가변적인 사항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컴퓨터용디스크 등에 대한 증거의 조사방식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을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보다 탄력성이 있는 하위법규인 대법원규칙에 위임할 필요성이 인정된다.
증거는 원칙적으로 소송관계인이 주체가 되어 공판정에서 개별적으로 지시설명하여 조사하여야 하는 것이므로(형사소송법 제291조), 심판대상조항에 따라 대법원규칙에 규율될 내용은 관련 조항과 종래의 실무례 등을 반영하여 컴퓨터용디스크 등에 담긴 정보가 먼저 소
송관계인에 의하여 공판정에 구체적으로 현출됨으로써 실질적 증거조사가 이루어 질 수 있는 방식이 될 것임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나아가 소송관계인들에게 증거에 대한 의견제시와 반박의 기회를 충분히 부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증거조사를 신청한 당사자는 컴퓨터용디스크 등에 입력한 사람과 입력한 일시, 출력한 사람과 출력한 일시를 밝혀 출력문서의 진정성립과 내용의 정확성을 담보하고, 이에 대하여 다툼이 생기는 경우에 증인으로 신문하거나 감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함도, 컴퓨터용디스크 등의 성격, 일상적 사용방법 등에 비추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포괄위임금지원칙을 위반하지 아니한다.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 재판관 강일원의 별개의견
헌법 제75조와 달리 헌법 제108조는 법률의 위임을 요구하지 않고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소송절차 등에 관하여 대법원규칙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므로, 대법원규칙에는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한 법률에 명시적인 위임규정이 없더라도 소송절차에 관한 행위나 권리를 제한하는 규정을 둘 수 있다. 헌법 제108조가 대법원의 규칙제정권을 인정하면서 법률의 위임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권력분립의 정신에 비추어 사법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고, 소송절차 등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재판실무에 정통한 사법부에서 직접 정하는 것이 전문성과 효율성을 더 살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러한 헌법 제108조의 규정상 국회가 소송절차 등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하면서 구체적 내용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도록 위임한다면, 이는 헌법이 인정하는 대법원의 규칙제정권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대법원규칙에 입법권한을 위임한 법률조항에 대해서는 포괄위임금지원칙 위반 여부를 심사할 필요가 없다.
심판대상조문
형사소송법(2007. 6. 1. 법률 제8496호로 개정된 것) 제292조의3 (그 밖의 증거에 대한 조사방식) 도면⋅사진⋅녹음테이프⋅비디오테이프⋅컴퓨터용디스크, 그 밖에 정보를 담기 위하여 만들어진 물건으로서 문서가 아닌 증거의 조사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한다.
참조조문
헌법 제75조, 제108조
형사소송법(2007. 6. 1. 법률 제8496호로 개정된 것) 제292조 (증거서류에 대한 조사방식) ①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신청에 따라 증거서류를 조사하는 때에는 신청인이 이를 낭독하여야 한다.
② 법원이 직권으로 증거서류를 조사하는 때에는 소지인 또는 재판장이 이를 낭독하여야 한다.
③ 재판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제1항 및 제2항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고지하는 방법으로 조사할 수 있다.
④ 재판장은 법원사무관 등으로 하여금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낭독이나 고지를 하게 할 수 있다.
⑤ 재판장은 열람이 다른 방법보다 적절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증거서류를 제시하여 열람하게 하는 방법으로 조사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2007. 6. 1. 법률 제8496호로 개정된 것) 제292조의2 (증거물에 대한 조사방식) ①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신청에 따라 증거물을 조사하는 때에는 신청인이 이를 제시하여야 한다.
② 법원이 직권으로 증거물을 조사하는 때에는 소지인 또는 재판장이 이를 제시하여야 한다.
③ 재판장은 법원사무관등으로 하여금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제시를 하게 할 수 있다.
형사소송규칙(2007. 10. 29. 대법원규칙 제2106호로 개정된 것) 제134조의7 (컴퓨터용디스크 등에 기억된 문자정보 등에 대한 증거조사) ① 컴퓨터용디스크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정보저장매체(다음부터 이 조문 안에서 이 모두를 “컴퓨터디스크 등”이라 한다)에 기억된 문자정보를 증거자료로 하는 경우에는 읽을 수 있도록 출력하여 인증한 등본을 낼 수 있다.
② 컴퓨터디스크 등에 기억된 문자정보를 증거로 하는 경우에 증거조사를 신청한 당사자는 법원이 명하거나 상대방이 요구한 때에는 컴퓨터디스크 등에 입력한 사람과 입력한 일시, 출력한 사람과 출력한 일시를 밝혀야 한다.
③ 컴퓨터디스크 등에 기억된 정보가 도면⋅사진 등에 관한 것인 때에는 제1항과 제2항의 규정을 준용한다.
형사소송규칙(2007. 10. 29. 대법원규칙 제2106호로 개정된 것) 제134조의8 (음성⋅영상자료 등에 대한 증거조사) ① 녹음⋅녹화테이프, 컴퓨터용디스크, 그 밖에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음성이나 영상을 녹음 또는 녹화(다음부터 이 조문 안에서 “녹음⋅녹화 등”이라 한다)하여 재생할 수 있는 매체(다음부터 이 조문 안에서 “녹음⋅녹화매체 등”이라 한다)에 대한 증거조사를 신청하는 때에는 음성이나 영상이 녹음⋅녹화 등이 된 사람, 녹음⋅녹화 등을 한 사람 및 녹음⋅녹화 등을 한 일시⋅장소를 밝혀야 한다.
② 녹음⋅녹화매체 등에 대한 증거조사를 신청한 당사자는 법원이 명하거나 상대방이 요구한 때에는 녹음⋅녹음매체 등의 녹취서, 그 밖에 그 내용을 설명하는 서면을 제출하여
야 한다.
③ 녹음⋅녹화매체 등에 대한 증거조사는 녹음⋅녹화매체 등을 재생하여 청취 또는 시청하는 방법으로 한다.
형사소송규칙(2007. 10. 29. 대법원규칙 제2106호로 개정된 것) 제134조의9 (준용규정) 도면⋅사진 그 밖에 정보를 담기 위하여 만들어진 물건으로서 문서가 아닌 증거의 조사에 관하여는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법 제292조, 법 제292조의2의 규정을 준용한다.
참조판례
1. 헌재 2014. 10. 30. 2013헌바368, 공보 217, 1720, 1723
당사자
청 구 인 이○윤 대리인 법무법인 태원 담당변호사 정환희
당해사건 대법원 2012도12100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 등
주문
형사소송법(2007. 6. 1. 법률 제8496호로 개정된 것) 제292조의3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유
1. 사건개요
가. 청구인은 육군 중령으로 근무하던 사람으로서, 2011. 12. 26. 피해자 고○미의 정보통신망에 침입하고 타인의 비밀을 침해하였다는 범죄사실로, 제1심 법원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국방부 보통군사법원 2011고12). 1심 법원은 청구인에 대한 판결을 선고함에 있어서 군사법경찰관의 증언, 피해자의 검찰진술조서를 비롯하여 군사법경찰관이 작성한 포워드(Forward) 목록, 다음계정 로그인기록, 컴퓨터 포렌식 분석결과 통보, 컴퓨터하드디스크 및 PC방 CCTV 등을 유죄의 증거로 삼았다. 이에 청구인이 항소하였는데(고등군사법원 2012노16), 청구인이 전역함에 따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항소사건이 이송되었고 2012. 9. 14. 항소기각 판결을 선고받았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2노
2347).
나. 청구인이 상고하여 상고심 재판 계속 중 군사법원법 제348조의2 및 형사소송법 제292조의3에 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대법원은 2012. 12. 26. 상고를 기각함(대법원 2012도12100)과 동시에 그 신청도 기각하였다(대법원 2012초기592).
다. 청구인은 위 조항들이 포괄위임금지원칙 등에 위반되어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2013. 1. 25.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대상
가. 군인신분이던 청구인이 전역함에 따라 당해사건에서 청구인에 대하여 적용되는 법률이 군사법원법에서 동일한 내용의 형사소송법 조항으로 바뀌었으므로, 이 사건의 심판대상은 형사소송법(2007. 6. 1. 법률 제8496호로 개정된 것) 제292조의3(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나. 한편, 청구인은 예비적으로 위 조항에 따른 증거조사에 있어서 ‘조사자가 같은 피의자에 대한 피의자신문에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있으나, 이는 결국 재판부의 증거취사선택에 관한 결정을 다투는 것으로 법률에 대한 적법한 예비적 청구라 보기 어려우므로 별도로 심판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심판대상조항 및 관련조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형사소송법(2007. 6. 1. 법률 제8496호로 개정된 것)
제292조의3(그 밖의 증거에 대한 조사방식) 도면⋅사진⋅녹음테이프⋅비디오테이프⋅컴퓨터용디스크, 그 밖에 정보를 담기 위하여 만들어진 물건으로서 문서가 아닌 증거의 조사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한다.
[관련조항]
형사소송법(2007. 6. 1. 법률 제8496호로 개정된 것)
제292조(증거서류에 대한 조사방식) ①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신청에 따라 증거서류를 조사하는 때에는 신청인이 이를 낭독하여야 한다.
② 법원이 직권으로 증거서류를 조사하는 때에는 소지인 또는 재판장이 이를 낭독하여야 한다.
③ 재판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제1항 및 제2항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고지하는 방법으로 조사할 수 있다.
④ 재판장은 법원사무관 등으로 하여금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에 따
른 낭독이나 고지를 하게 할 수 있다.
⑤ 재판장은 열람이 다른 방법보다 적절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증거서류를 제시하여 열람하게 하는 방법으로 조사할 수 있다.
제292조의2(증거물에 대한 조사방식) ①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신청에 따라 증거물을 조사하는 때에는 신청인이 이를 제시하여야 한다.
② 법원이 직권으로 증거물을 조사하는 때에는 소지인 또는 재판장이 이를 제시하여야 한다.
③ 재판장은 법원사무관등으로 하여금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제시를 하게 할 수 있다.
형사소송규칙 (2007. 10. 29. 대법원규칙 제2106호로 개정된 것)
제134조의7(컴퓨터용디스크 등에 기억된 문자정보 등에 대한 증거조사) ① 컴퓨터용디스크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정보저장매체(다음부터 이 조문 안에서 이 모두를 “컴퓨터디스크 등”이라 한다)에 기억된 문자정보를 증거자료로 하는 경우에는 읽을 수 있도록 출력하여 인증한 등본을 낼 수 있다.
② 컴퓨터디스크 등에 기억된 문자정보를 증거로 하는 경우에 증거조사를 신청한 당사자는 법원이 명하거나 상대방이 요구한 때에는 컴퓨터디스크 등에 입력한 사람과 입력한 일시, 출력한 사람과 출력한 일시를 밝혀야 한다.
③ 컴퓨터디스크 등에 기억된 정보가 도면⋅사진 등에 관한 것인 때에는 제1항과 제2항의 규정을 준용한다.
제134조의8(음성⋅영상자료 등에 대한 증거조사) ① 녹음⋅녹화테이프, 컴퓨터용디스크, 그 밖에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음성이나 영상을 녹음 또는 녹화(다음부터 이 조문 안에서 “녹음⋅녹화 등”이라 한다)하여 재생할 수 있는 매체(다음부터 이 조문 안에서 “녹음⋅녹화매체 등”이라 한다)에 대한 증거조사를 신청하는 때에는 음성이나 영상이 녹음⋅녹화 등이 된 사람, 녹음⋅녹화 등을 한 사람 및 녹음⋅녹화 등을 한 일시⋅장소를 밝혀야 한다.
② 녹음⋅녹화매체 등에 대한 증거조사를 신청한 당사자는 법원이 명하거나 상대방이 요구한 때에는 녹음⋅녹음매체 등의 녹취서, 그 밖에 그 내용을 설명하는 서면을 제출하여야 한다.
③ 녹음⋅녹화매체 등에 대한 증거조사는 녹음⋅녹화매체 등을 재생하여 청취 또는 시청하는 방법으로 한다.
제134조의9(준용규정) 도면⋅사진 그 밖에 정보를 담기 위하여 만들어진 물건으로서 문서가 아닌 증거의 조사에 관하여는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법 제
292조, 법 제292조의2의 규정을 준용한다.
3. 청구인의 주장
심판대상조항은 ‘컴퓨터용디스크 등에 기억된 정보에 대한 증거조사방식’에 대하여 그 증거조사 주체의 자격 및 증거조사의 범위 등에 있어서 법률에 아무런 정함이 없이 하위법령인 대법원규칙에 위임하고 있으므로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반되고, 청구인의 인간의 존엄 및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위헌이다.
4. 판 단
가. 포괄위임금지원칙 위반 여부
(1) 대법원규칙에 대한 입법위임과 포괄위임금지원칙
헌법 제75조는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위임입법의 근거와 아울러 그 범위와 한계를 제시하고 있다. 헌법 제108조는 “대법원은 법률에서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대법원규칙도 소송절차에 관하여는 법률의 위임을 받아 일정한 사항을 규율할 수 있다.
헌법 제75조에 근거한 포괄위임금지원칙은 법률에 이미 대통령령 등 하위법규에 규정될 내용 및 범위의 기본사항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당해 법률로부터 하위법규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하는데, 위임입법이 대법원규칙인 경우에도 수권법률에서 이 원칙을 준수하여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헌재 2014. 10. 30. 2013헌바368 참조).
다만, 대법원규칙으로 규율될 내용들은 소송에 관한 절차와 같이 법원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사무에 관한 것이 대부분일 것인바, 법원의 축적된 지식과 실제적 경험의 활용, 규칙의 현실적 적응성과 적시성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수권법률에서의 위임의 구체성⋅명확성의 정도는 다른 규율 영역에 비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위임의 구체성⋅명확성 내지 예측가능성의 유무는 당해 특정조항 하나만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관련법조항 전체를 유기적⋅체계적으로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위임된 사항의 성질에 따라 구체적⋅개별적으로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헌재 2002. 3. 28. 2001헌바24등 참조).
(2) 판단
(가) 위임의 필요성
심판대상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증거방법인 컴퓨터용디스크 등은 IT 기술의 발전과 급속한 변화로 그 종류뿐만 아니라 범위가 광범위하고 끊임없이 새로 생기는 물건이므로 그러한 증거에 대한 조사방식을 일률적으로 규정하거나 그 모든 증거에 대한 조사방식을 미리 법률에서 세부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입법기술상 불가능하다. 즉, 기존의 문서나 물건과는 다른 형태의 다양한 증거가 발생되는 현실에서 정보저장매체의 특성을 반영하여 일일이 법률규정에서 증거조사방식을 규율하기란 사실상 매우 곤란하며, 컴퓨터용디스크 등에 대한 증거조사방식은 기술적이고 전문적이며 가변적인 사항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컴퓨터용디스크 등에 대한 증거의 조사방식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을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보다 탄력성이 있는 하위법규인 대법원규칙에 위임할 필요성이 인정된다.
(나) 예측가능성
형사소송법 제290조 이하에서는 증거조사 절차에 대하여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고, 특히 증거서류와 증거물 등 중요한 증거방법에 대한 증거조사방식에 대하여는 형사소송법 제292조 및 제292조의2 등에서 증거방법별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심판대상조항이 2007. 6. 1. 신설되기 전 형사소송법에서는 증거조사에 있어서 증거물인 경우에는 제시, 증거서류인 경우에는 그 요지를 고지하도록 하고 있었고, 컴퓨터용디스크 등과 같은 특수한 증거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지만, 당시 형사재판의 증거조사 실무는 정보저장매체 등에 저장된 자료의 성격에 따라 그 내용을 읽을 수 있도록 출력한 문서를 제출하거나 검증, 감정을 준용하는 방식으로 증거조사를 하였다.
증거는 원칙적으로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 등 소송관계인이 주체가 되어 공판정에서 개별적으로 지시설명하여 조사하여야 하는 것이므로(형사소송법 제291조), 심판대상조항에 따라 대법원규칙에 규율될 내용은 관련 조항과 종래의 실무례 등을 반영하여 컴퓨터용디스크 등에 담긴 정보가 먼저 소송관계인에 의하여 공판정에 구체적으로 현출됨으로써 실질적 증거조사가 이루어 질 수 있는 방식이 될 것임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나아가 소송관계인들에게 증거에 대한 의견제시와 반박의 기회를 충분히 부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증거조사를 신청한 당사자는 컴퓨터용디스크 등에 입력한 사람과 입력한 일시, 출력한 사람과 출력한 일시를 밝혀 출력문서의 진정성립과 내용의 정확성을 담보하고 이에 대하여 다툼이 생기는 경우에 증인으로 신문하거나 감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함도, 컴퓨터용디스크 등의 성격, 일상적 사용방법 등에 비추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정보저장매체에 기억된 정보는 대부분 문자정보, 도면⋅사진, 음성이나 영상이 녹음 또는 녹화된 경우이므로, 그 문자정보를 증거자료로 하는 경우와 도면⋅사진 및 음성⋅영상자료 등에 대한 증거조사를 나누어 각각 열람 내지 청취, 시청이 가능하도록 그에 적합한 증거조사방식이 정해질 것임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즉, 심판대상조항은 컴퓨터용디스크 등에 대한 증거조사방식에 관하여 별다른 내용을 두지 않았지만, 형사소송법 제292조 및 제292조의2 등 당해 법률의 전반적 체계와 관련 규정의 해석을 통하여 대법원규칙에 규정될 내용을 대강 예측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다) 소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나. 청구인의 나머지 주장에 대한 판단
청구인은 심판대상조항이 컴퓨터용디스크 등에 대한 증거조사방식의 불분명함으로 인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열거되지 않은 기본권 등을 침해하고, 적법절차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청구인은 이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내용의 주장 없이 심판대상조항이 컴퓨터용디스크 등에 대한 증거조사방식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도록 위임하면서 그 주체 및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한정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청구인이 주장하는 기본권의 침해가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문제삼고 있으므로, 결국 이는 심판대상조항이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반된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또한 청구인은 수사 및 재판을 받음에 있어서 고소 이후 항소심 판결선고에 이르기까지 약 2년 7개월 이상 소요됨으로써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헌법 제27조 제3항)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나, 이는 심판대상조항과는 관련이 없는 주장이므로 이유 없다.
5. 결 론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이 결정은 아래 6.과 같은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 재판관 강일원의 별개의견이 있는 외에는 나머지 관여 재판관들의 일치된 의견에 따른 것이다.
6.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 재판관 강일원의 포괄위임금지원칙 위반 여부에 관한 별개의견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점은 다수의견과 견해가 같다. 다만, 심판대상조항이 포괄위임금지원칙을 위반하였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다수의견과 견해를 달리한다.
가. 헌법 제75조는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반면, 제108조는 법률의 위임을 요구하지 않고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및 법원의 내부 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하여 대법원규칙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규칙에는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한 법률에 명시적 위임규정이 없더라도 소송절차에 관한 행위나 권리를 제한하는 규정을 둘 수 있다(헌재 1995. 12. 28. 91헌마114 참조).
나. 헌법 제108조가 대법원의 규칙제정권을 인정하면서 법률의 위임을 요구하지 않고 있는 것은 권력분립의 정신에 비추어 입법권에 의한 사법권에의 간섭을 최소화하여 사법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송절차 등에 관한 사항은 입법부에서 상세히 법률로 규정하는 것보다 재판실무에 정통한 사법부에서 직접 정하는 것이 전문성과 효율성을 더 살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이다. 대법원의 규칙제정권은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만 인정되므로 입법부는 언제든지 법률을 제정하여 대법원의 규칙제정권을 제한하고 견제할 수 있다.
미국은 연방헌법에서 사법부의 규칙제정권에 관하여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지만, 삼권분립의 원칙상 소송절차에 관한 규칙제정권은 사법부의 고유권한으로 인정되고 있다. 연방의회는 소송절차에 관하여 가장 기본적 사항만 법률로 규정하고 있고, 연방대법원이 제정한 소송규칙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경우 민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법 등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각종 절차에 관한 사항을 모두 규율하고 있다. 미국의 영향 아래 제정된 일본 헌법도 “최고재판소는 소송에 관한 절차, 변호사, 재판소의 내부규율 및 사법사무처리에 관한 사항에 관하여 규칙을 정할 권한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헌법은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라는 제한조차 두지 않고 있다. 우리 헌법 제108조도 그 뿌리는 미국과 같이 삼권분립의 원칙에서 찾을 수 있다.
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근거한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은 국회가 제정한 형식적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헌법이 법률과 같은 효력을 인정하는 규범에 의해서도 제한될 수 있다. 예컨대, 국가긴급권 또는 조약 등 국제법에 따라 국민의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헌법 제108조에 따라 제정된 대법원규칙에 의해 소송절차 등에 관한 국민의 권리가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
라. 대법원규칙이 법률의 위임 없이 ‘소송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사항’을 정할 수 있음은 헌법 제108조의 규정상 명백하다. 국회가 소송절차 등에 관하여 법률을 제정하면 대법원은 여기에 저촉되는 규칙을 제정할 수 없다. 그러나 국회가 소송절차 등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하면서 구체적 내용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도록 위임한다면, 이는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대법원의 규칙제정권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법원규칙에 입법권한을 위임한 법률조항에 대해서는 포괄위임금지원칙 위반 여부를 심사할 필요가 없다. 헌법 제75조는 입법권을 행정부에 위임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위임의 명확성을 요청하고 있으므로, 헌법 제75조의 포괄위임금지원칙은 대법원규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수의견과 같이 소송절차 등에 관한 사항이라 할지라도 법률에서 위임 규정을 둔 이상 포괄위임금지원칙이 적용된다고 볼 경우 법률이 포괄위임금지원칙을 위반하면 위헌 선언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소송절차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법률의 규정이 포괄위임금지원칙 위반으로 위헌 선언이 되더라도 그 사항을 규정한 대법원규칙은 법률의 위임 없이도 제정될 수 있는 것이어서 위헌 선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헌법 제108조에 규정된 사항이라도 법률에 위임 규정을 두면 헌법 제75조에 따라 포괄위임금지원칙 위반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형식적 논리로 귀결되고 만다.
다수의견은 소송절차에 관한 사항이 전문적이고 기술적 사무에 관한 것이어서 법률에서의 위임의 구체성과 명확성의 정도는 다른 규율 영역에 비해 완화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성과 기술성을 따지면 행정부의 관장사항이 사법부보다 더 복잡하고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다. 포괄위임금지원칙 심사를 하더라도 헌법 제108조를 감안하여 완화된 심사를 하여야 한다면, 헌법 제108조에 규정된 사항에 대하여는 포괄위임금지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헌법의 규정에 맞는 해석이다.
마. 심판대상조항이 대법원규칙에 위임한 사항은 문서가 아닌 증거의 조사방법에 관한 것으로 소송절차에 관한 사항이다. 따라서 헌법 제108조에서 허용한 대법원규칙의 제정범위에 속하는 것이다. 또 이 부분에 관하여 대법원규
칙과 저촉되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법률 규정은 없다. 오히려 법률은 이 부분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도록 명시적으로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의 위헌성을 심사하면서 포괄위임금지원칙 위반 여부는 심사할 필요가 없다.
바. 위에서 검토한 것처럼 위임입법이 대법원규칙인 경우에는 수권법률의 포괄위임금지원칙 위반 여부는 검토할 필요가 없는데, 종전에 이와 견해를 달리하여 위임입법이 대법원규칙인 경우에도 수권법률에서 포괄위임금지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헌법재판소 2014. 10. 30. 선고 2013헌바368 결정에 관한 우리 의견은 이상의 견해와 저촉되는 범위에서 변경한다.
재판관 박한철(재판장)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