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2021. 8. 31. 2019헌바439 [합헌]

출처 헌법재판소

방송법 제4조 제2항 위헌소원

[2021. 8. 31. 2019헌바439]


판시사항



1. 방송편성에 관하여 간섭을 금지하는 방송법 제4조 제2항의 ‘간섭’에 관한 부분(이하 ‘금지조항’이라 한다)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소극)

2. 위 금지조항 및 그 위반 행위자를 처벌하는 구 방송법 제105조 제1호 중 제4조 제2항의 ‘간섭’에 관한 부분(두 조항을 합하여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소극)



결정요지



1. 금지조항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방송사 외부에 있는 자가 방송편성에 관계된 자에게 방송편성에 관해 특정한 요구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방송편성에 관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 일체를 금지한다는 의미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따라서 금지조항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2. 방송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기초인바, 국가권력은 물론 정당, 노동조합, 광고주 등 사회의 여러 세력이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방송편성에 개입한다면 국민 의사가 왜곡되고 민주주의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게 된다.

심판대상조항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방송에 개입하여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간섭’에 이르는 행위만을 금지하고 처벌할 뿐이고, 방송법과 다른 법률들은 방송 보도에 대한 의견 개진 내지 비판의 통로를 충분히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심판대상조문



방송법(2000. 1. 12. 법률 제6139호로 폐지제정된 것) 제4조 제2항의 ‘간섭’에 관한 부분

구 방송법(2000. 1. 12. 법률 제6139호로 폐지제정되고, 2020. 6. 9. 법률 제1734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05조 제1호 중 제4조 제2항의 ‘간섭’에 관한 부분



참조조문



헌법 제21조 제1항

방송법(2000. 1. 12. 법률 제6139호로 폐지제정된 것) 제1조, 제2조 제1호, 제15호, 제17호, 제4조 제1항, 제3항, 제6조 제1항, 제2항, 제3항, 제4항



참조판례



1. 헌재 2006. 7. 27. 2004헌바46, 판례집 18-2, 68, 73 헌재 2010. 3. 25. 2009헌가2, 판례집 22-1상, 407, 413



당사자



청 구 인 이○○

대리인 변호사 박현상

당해사건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노50 방송법위반



주문



방송법(2000. 1. 12. 법률 제6139호로 폐지제정된 것) 제4조 제2항의 ‘간섭’에 관한 부분 및 구 방송법(2000. 1. 12. 법률 제6139호로 폐지제정되고, 2020. 6. 9. 법률 제1734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05조 제1호 중 제4조 제2항의 ‘간섭’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유



1. 사건개요

가. 청구인은 2014. 4. 21.과 2014. 4. 30. 대통령 비서실 ○○(직급생략)의 지위를 이용하여 한국방송공사(KBS) 보도국장인 김○○에게 직접 전화하여 같은 날 방송된 ‘KBS 9시 뉴스’의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건에 대한 해경 비판 뉴스 보도에 항의하고 향후 비판 보도를 중단 내지 대체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법률에 의하지 않고 방송편성에 간섭하였다는 범죄사실로 기소되어, 2018. 12.

14. 제1심 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았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고단8762).

나. 청구인은 위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서울중앙지방법원 2019노50), 항소심 계속 중인 2019. 7. 11. 방송법 제4조 제2항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서울중앙지방법원 2019초기3176), 2019. 10. 28. 기각되었다.

다. 이에 청구인은 방송법 제4조 제2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2019. 11. 14.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대상

가. 청구인은 방송편성에 관하여 규제나 간섭을 금지하는 방송법 제4조 제2항 전체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심판청구를 하였다. 그런데 당해 사건은 방송편성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방송편성에 대한 ‘간섭’ 행위가 문제되어 청구인이 처벌받은 사안이므로, 심판대상조항의 범위도 방송법 제4조 제2항 중 ‘간섭’에 관한 부분으로 한정한다.

나. 한편, 청구인은 금지조항인 위 방송법 제4조 제2항의 위헌확인만을 구하고 있으나, 당해 사건이 형사재판이므로 재판에 직접 적용되는 처벌조항도 금지조항과 함께 심판대상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처벌조항인 방송법 제105조 제1호 중 제4조 제2항의 ‘간섭’에 관한 부분도 그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로 한다.

다.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대상은 방송법(2000. 1. 12. 법률 제6139호로 폐지제정된 것) 제4조 제2항의 ‘간섭’에 관한 부분(이하 ‘금지조항’이라 한다.) 및 구 방송법(2000. 1. 12. 법률 제6139호로 폐지제정되고, 2020. 6. 9. 법률 제1734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05조 제1호 중 제4조 제2항의 ‘간섭’에 관한 부분(이하 ‘처벌조항’이라 하고, 두 조항을 합하여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심판대상조항 및 관련조항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방송법(2000. 1. 12. 법률 제6139호로 폐지제정된 것)

제4조(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②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

구 방송법(2000. 1. 12. 법률 제6139호로 폐지제정되고, 2020. 6. 9. 법률 제1734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05조(벌칙)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제4조 제2항의 규정에 위반하여 방송편성에 관하여 규제나 간섭을 한 자

[관련조항]

방송법(2000. 1. 12. 법률 제6139호로 폐지제정된 것)

제1조(목적) 이 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시청자의 권익보호와 민주적 여론형성 및 국민문화의 향상을 도모하고 방송의 발전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용어의 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방송”이라 함은 방송프로그램을 기획ㆍ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개별계약에 의한 수신자를 포함하며, 이하 “시청자”라 한다)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으로서 다음 각목의 것을 말한다.

가. ~ 다. (생략)

15. “방송편성”이라 함은 방송되는 사항의 종류ㆍ내용ㆍ분량ㆍ시각ㆍ배열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17. “방송프로그램”이라 함은 방송편성의 단위가 되는 방송내용물을 말한다.

제4조(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①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

② (생략)

③ 방송사업자는 방송편성책임자를 선임하고, 그 성명을 방송시간내에 매일 1회 이상 공표하여야 하며, 방송편성책임자의 자율적인 방송편성을 보장하여야 한다.

④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는 방송프로그램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하여야 한다.

제6조(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①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② 방송은 성별ㆍ연령ㆍ직업ㆍ종교ㆍ신념ㆍ계층ㆍ지역ㆍ인종등을 이유로 방송편성에 차별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 다만, 종교의 선교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가 그 방송분야의 범위 안에서 방송을 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③ 방송은 국민의 윤리적ㆍ정서적 감정을 존중하여야 하며, 국민의 기

본권 옹호 및 국제친선의 증진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④ 방송은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ㆍ신장하여야 한다.

⑤ ∼ ⑨ (생략)

3. 청구인 주장

가. 방송법상 방송편성에의 간섭은 금지되고 그 위반 시 처벌됨에도 불구하고, 심판대상조항은 그 간섭 행위의 내용과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왜곡되고 불공정한 보도에 대한 정당한 언론비판 행위와 방송편성 간섭 행위 간의 구별을 어렵게 하므로 명확성원칙에 위반된다.

나. 시청자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시청할 권리를 가지며 왜곡된 보도에 대해서는 의견 개진 내지 비판을 할 수 있음에도, 심판대상조항은 그러한 행위를 방송편성에 대한 간섭이라고 하여 금지하고 처벌함으로써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여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

4. 판단

가. 방송편성의 자유 및 그 제한

헌법은 제2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언론ㆍ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바, 방송의 자유는 언론ㆍ출판의 자유 중 하나로 인정된다.

방송의 자유의 내용으로는 방송설립의 자유, 방송운영의 자유, 방송편성의 자유(프로그램의 자유) 등이 언급되고, 그 중 방송편성의 자유야말로 방송의 자유의 핵심이다. 이것은 방송주체가 외부의 압력이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언론적 과제나 방식, 즉 방송프로그램의 선정, 내용 및 형식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방송법상으로는 방송되는 사항의 종류ㆍ내용ㆍ분량ㆍ시각ㆍ배열을 자유롭게 정하는 것을 가리킨다(방송법 제2조 제15호 참조).

이러한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되고, 누구도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을 할 수 없다(방송법 제4조).

그런데 방송의 자유에 대하여는 방송의 공익성과 같은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여러 유형의 제한 내지 규제가 행해지고 있는바, 방송법에는 진입 규제, 소유 규제, 시장점유율 규제, 내용 규제, 편성 규제, 광고 규제 등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특히 방송편성의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서의 편성 규제는 일종의 내용 규제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서, 방송법상으로는 방송 프로그램의 편성 유형, 채널의

구성과 운영, 국내 프로그램 편성 의무, 외주 제작 프로그램의 편성 의무, 광고방송 규제, 협찬고지 규제, 재난방송 편성, 보편적 편성권, 지상파 재송신 등 다양한 내용이 규정되어 있다(방송법 제33조, 제69조 내지 제74조 등 참조).

한편, 방송 편성기준의 원칙으로는 크게 2가지가 인정되는바, 첫째, 공정성의 원칙과 둘째, 다양성의 원칙이다. 이러한 공정성ㆍ다양성의 원칙은 우리 방송법에는 다음과 같이 반영되고 있다.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며, 방송은 성별ㆍ종교ㆍ계층ㆍ지역 등을 이유로 편성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제6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의 내용이 공정성과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심의할 수 있으며(제32조), 방송의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미디어다양성위원회가 설치된다(제35조의4). 그리고 방송사업자는 프로그램 편성시 공정성ㆍ다양성 등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하며, 종합편성사업자는 보도ㆍ교양ㆍ오락 등 다양한 방송분야 상호간에 조화를 이루도록 편성을 해야 하고(제69조), 일정한 비율의 국내 제작 프로그램과 순수외주제작 프로그램을 편성하여야 한다(제71조, 제72조).

나.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 위반 여부

이 사건 금지조항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표제 아래 법률에 의하지 않는 방송편성에 관한 간섭을 금지하고, 이 사건 처벌조항은 그 위반행위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형사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에 청구인은 이 사건 금지조항이 ‘간섭’의 의미를 구체화하고 있지 않아 명확성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1)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할 수 있게끔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요구한다. 형벌법규의 내용이 애매모호하거나 추상적이어서 불명확하면 무엇이 금지된 행위인지를 국민이 알 수 없어 법을 지키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범죄의 성립 여부가 법관의 자의적인 해석에 맡겨져 죄형법정주의에 의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법치주의의 이념이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명확하여야 한다고 하더라도 입법자가 모든 구성요건을 단순한 의미의 서술적인 개념에 의하여 규정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 구성요건이 다소 광범위하여 어떤 범위에서는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는 개념을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점만으로 헌법이 요구하

는 처벌법규의 명확성원칙에 반드시 배치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즉,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그 적용 대상자가 누구이며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가 금지되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면 명확성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정형적이 되어 부단히 변화하는 다양한 생활관계를 제대로 규율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헌재 2010. 3. 25. 2009헌가2 참조).

한편, 처벌규정에 대한 예측가능성 유무를 판단할 때는 당해 특정조항만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고, 입법목적ㆍ입법연혁ㆍ당해 법률의 체계적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관련 법조항 전체를 종합 판단하여야 하며, 대상 법률의 성질에 따라 구체적ㆍ개별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헌재 2006. 7. 27. 2004헌바46 참조).

(2) 간섭의 주체, 객체 등

이 사건 금지조항은 ‘간섭’이라는 용어의 정의는 물론 그 주체와 객체, 간섭의 시점, 결과발생 요부 등의 문제에 관해 별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바, 해석을 통해 규정의 의미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지 문제된다.

우선, 이 사건 금지조항은 ‘누구든지’ 간섭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므로, 그 행위의 주체는 가리지 아니한다.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국가권력을 가리키고, 나아가 다양한 사회의 제 세력을 모두 포괄할 것이다. 여기서 다양한 사회세력이란 정당(여당ㆍ야당)과 같은 정치권력은 물론, 시민단체, 노동조합(언론노조 및 기타 노조), 그리고 대기업이나 광고주 등을 포함하여 방송편성의 자유에 영향을 끼칠 만한 존재를 모두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방송편성에 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아예 없는 사람의 행위라면 ‘간섭’이 될 여지가 없으므로, 그 행위자는 방송편성에 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 또는 관계에 있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러한 지위나 관계에 있는지 여부는 상대방이 인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객관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그리고 간섭은 방송편성에 관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를 상대로 해야 할 것인바, 그 대상에는 방송법상의 방송편성책임자는 물론 방송편성에 관계하는 종사자도 포섭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그 여부는 법적ㆍ형식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실질적ㆍ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데, 법적ㆍ형식적ㆍ최종적 결정권자만으로 제한하여 해석한다면 실질적ㆍ중간단계상의 결정권자를 통한 개

입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3) 간섭의 내용, 시점, 결과발생 요부 등

앞서 보았듯이, 방송법은 ‘간섭’이라는 용어의 정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데, 이는 방송법에서 사용한 ‘간섭’의 뜻이 ‘직접 관계가 없는 남의 일에 부당하게 참견하는 것’이라는 일반인들이 사회생활에서 사용하는 간섭 행위의 의미와 별다른 차이가 없고, 그 통상적인 용례에 따라 의미를 알 수 있어서 굳이 정의 규정을 둘 필요가 없다고 입법자가 판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입법에 있어서는 법률의 모든 단어에 대해 정의 조항을 둘 수 없고 어느 정도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바, 간섭이라는 행위의 다양한 태양을 세부적으로 모두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더구나 방송의 자유를 민주적 여론형성을 위해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필요성에 비추어, 방송에 대한 간섭의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므로 행위 태양을 일일이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입법 취지에 반할 수 있다.

한편, 방송법 제4조 제2항은 금지되는 것으로서 ‘간섭’ 외에 ‘규제’를 규정하고 있는바, 이 ‘규제’와의 비교를 통하여도 ‘간섭’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즉, 방송편성에 대한 방송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한 규제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여러 사항들이 있는바, 그렇다면 ‘규제’란 법적ㆍ공식적ㆍ제도적인 양태를 띠고, 그에 비할 때 ‘간섭’이란 비공식적ㆍ비제도적인 양태를 띨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간섭 행위의 수단과 방법에는 제한이 없을 것이고,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에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즉, 대면접촉은 물론 전화ㆍ이메일을 통한 연락을 불문하며, 위협, 협박, 강압은 물론 회유, 권유라는 수단도 가능할 것이다.

간섭 행위의 시점에 관해 보자면, 간섭은 방송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인바, 방송이 이미 이루어진 후에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을 하거나 그 내용에 대해 비평ㆍ의견표명을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간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행위에서 더 나아가 향후 이루어질 방송에 대해 특정한 방향으로의 방송을 요구하거나, 법률에서 정한 절차와 방식에 따르지 않은 채 특정 방송내용을 교체하거나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행위는 방송편성에 대한 간섭 행위가 될 것이다.

끝으로, 방송편성에 대한 간섭의 결과로 방송편성이 변경ㆍ취소되는 등의

현실적 침해가 발생할 것은 요구되지 않으며,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위험의 야기로 위반행위는 성립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방송편성이 변경ㆍ취소될 현실적 위험이 있을 것까지 요하지도 않으며 방송편성의 독립과 자유에 대한 일반적 위험만으로 족하다고 하겠다.

(4) 소결

방송법 규정의 목적, 입법 취지와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보면, 금지조항이 말하는 ‘간섭’이란 방송편성, 즉 방송되는 사항의 종류ㆍ내용ㆍ분량ㆍ시각ㆍ배열을 정함에 있어 특정한 편성을 하도록 하거나, 이미 정해진 방송편성을 중단ㆍ연기ㆍ변경하도록 강요ㆍ유도ㆍ조장ㆍ억압ㆍ방해하는 등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체의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사건 금지조항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하여 방송사 외부에 있는 자가 방송편성에 관계된 자에게 방송편성에 관해 특정한 요구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방송편성에 관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 일체를 금지하는 취지임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금지조항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면 당해 처벌법규의 보호법익과 그에 의해 금지된 행위 및 처벌의 종류와 정도를 알 수 있다고 할 것이어서, 헌법이 요구하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다. 과잉금지원칙 위반 여부

청구인은 주장하기를, 시청자는 왜곡된 보도에 대해 의견 개진 내지 비판을 할 수 있음에도 심판대상조항이 그것을 간섭 행위라고 하여 금지하고 나아가 처벌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한다.

(1) 제한되는 기본권

심판대상조항은 방송편성에 대한 간섭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는데, 이때 ‘간섭’이 주로 의사의 표현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에 의해 제한되는 기본권은 헌법 제21조가 규정한 표현의 자유라고 할 것이다. 청구인의 주장은 시청자에게는 방송 내용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항의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존재한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2)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

방송법은 제1조에서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는 데 방송법의 목적이 있음을 선언하면서, 제2조에서 ‘방송’은 방송프로그램을 기획ㆍ편성 또는 제작하

여 이를 공중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으로서 텔레비전방송, 라디오방송, 데이터방송 및 이동멀티미디어방송을 말하고(제1호), ‘방송편성’은 방송되는 사항의 종류ㆍ내용ㆍ분량ㆍ시각ㆍ배열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고(제15호) 규정하고 있다.

이어 제4조에서는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되고(제1항),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제2항) 규정함으로써, 방송편성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심판대상조항은 1963년 방송법 제정 이래 현행법에 이르기까지 계속 유지되어온 것으로서, 방송이 국가권력 등으로부터 간섭받은 과거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도입된 이래 여러 차례의 방송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명을 이어온 조항이다.

위와 같은 방송법 규정들의 입법취지와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보면, 심판대상조항이 방송편성에 관하여 간섭을 금지하고 나아가 이를 위반한 자를 처벌하는 취지는 국가권력은 물론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로부터 방송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방송편성에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행위를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엄격히 보장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은 그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또한 심판대상조항을 통해 방송편성에 간섭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나아가 형사적 제재를 부과하는 것은 위와 같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에 효과적이고 적절한 방법이므로 그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

(3) 침해의 최소성

(가) 심판대상조항은 방송편성에 개입하여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만을 규율한다. 즉, 방송편성에 관한 모든 의견 개진이나 비판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금지조항이 규정하는 ‘간섭’ 행위에 이르렀을 경우에만 금지하고 나아가 처벌하는 것이다. ‘간섭’에 이르지 않는 시청자의 건전한 방송 비판 내지 의견제시까지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간섭’ 행위의 의미와 범위에 관해서는, 앞서 명확성원칙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에서 엄격한 요건과 해석론을 살펴본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상론을 피한다.

(나) 한편, 금지조항은 방송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한 규제나 간섭인 경우에는 이를 허용하고 있는바, 실제로 방송법은 시청자가 방송편성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방송사업자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장

치들을 두고 있다.

예컨대,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청자권익보호위원회를 두어 방송에 관한 시청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청자의 정당한 권익 침해 등 시청자 불만 및 청원사항을 심의하도록 하며, 시청자는 방송프로그램 및 방송편성 관련 사항에 대하여 시청자권익보호위원회에 불만을 신청하는 방법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방송법 제35조).

(다) 다음으로, 방송법이 아닌 다른 법률에 의해서도 방송에 대한 의견제시가 가능한 통로가 열려 있다.

우선,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사실적 주장에 관한 언론보도 등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자에게 해당 방송사업자 등을 상대로 정정보도, 반론보도, 추후보도를 청구할 수 있는 구제절차를 마련하고 있다(제14조 내지 제17조). 그리고 언론보도로 인해 직접 피해를 입은 자가 아니라도, 방송사업자 사내 고충처리인에게 의견이나 청원을 제기하는 등의 방법으로 언론보도에 대한 시정권고를 구하는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다(제6조).

나아가, 청구인과 같이 특수한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방송 내용에 대해 이견을 표명하기 위해 보도자료 내지 해명자료를 내거나, 브리핑을 하는 등의 공식적인 방법을 취할 수도 있다.

끝으로, 만약 행위자의 행위가 법률에 의해 주어진 권한에 의한 정당한 직무집행인 경우라면 일종의 정당행위로서 그 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라) 요컨대, 심판대상조항은 방송편성에 대한 일체의 의견 개진이나 비판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간섭’ 행위에 이르렀을 경우에 대해서만 이를 금지하며, 방송법과 기타 다른 법률에 의해 인정되는 다양한 의사표현의 방법과 통로가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원칙을 준수하였다.

(4) 법익의 균형성

(가) 방송은 문자가 아니라 시청각을 위주로 하는 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됨으로써 인쇄매체에 비해 강한 호소력이 있고, 많은 시청자에게 집단적ㆍ무차별적으로 동시에 전달되므로 여론 형성과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방송의 자유를 비롯한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기초인바, 국가권력은 물론 정당, 노동조합, 광고주 등 사회의 여러 세력이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방송편성에 개입하여 자신들의 주장과 경향성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여론화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국민 의사가 왜곡되고 우

리 사회의 불신과 갈등이 증폭되어 민주주의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방송은 언제나 시청자를 전제로 하는바, 시청자는 보다 질 좋고 공정하며 다양한 방송프로그램을 보고 즐기며 지적ㆍ정서적 자극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방송사업자가 자율적으로 방송편성을 할 수 있도록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이 지켜져야 한다.

(나) 방송의 역할과 영향력이 큰 만큼, 국가권력 혹은 정치권력 기타 사회세력들이 방송을 장악하고 이용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물론, 방송 또한 그러한 권력들에 편승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실제 우리 방송법의 역사에서 그러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사건에 있어서도 청와대 ○○(직급생략)이라는 지위에 있던 청구인은 보도자료 배포나 언론 브리핑과 같은 공식적이고 정상적인 방법을 취하는 대신, 방송종사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의 보도를 유도함으로써 방송에 간섭하고 있는바, 이는 일종의 잘못된 관행으로서 방송편성 간섭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여야 할 필요가 크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다) 반면, 방송에 대해 이견을 가지거나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싶은 시청자 내지 국민은 심판대상조항이 금지하는 간섭 행위에 이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로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방송법과 다른 법률은 그 방법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마련해놓고 있다.

(라)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이 달성하고자 하는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그에 따른 국민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의견형성 내지 여론형성이라는 공익에 비해 방송편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는 사람이 받는 불이익이 크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법익의 균형성 역시 충족한다.

(5) 소결

이와 같은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심판대상조항이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

5. 결론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재판관 유남석 이선애 이석태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