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2021. 1. 28. 2018헌바88 [합헌]
출처
헌법재판소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2호 제4조 등 위헌소원
[2021. 1. 28. 2018헌바88]
판시사항
1. 폐지된 법률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적극)
2. 1945. 8. 9. 이후 성립된 거래를 전부 무효로 한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2호 제4조 본문과 1945. 8. 9. 이후 일본 국민이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재산을 1945. 9. 25.자로 전부 미군정청이 취득하도록 정한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33호 제2조 전단 중 ‘일본 국민’에 관한 부분(이하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이 진정소급입법으로서 헌법 제13조 제2항에 반하는지 여부(소극)
결정요지
1. 심판대상조항은 ‘구법령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폐지된 조항이지만 계쟁 토지가 귀속재산인지 여부와 관련하여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재판규범으로서 적용되고 있고 그 위헌 여부가 당해사건의 재판의 전제가 되어 있으므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
2. 심판대상조항은 진정소급입법에 해당하지만 진정소급입법이라 할지라도 예외적으로 법적 상태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웠거나 하여 보호할 만한 신뢰의 이익이 적은 경우나 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 정당화하는 경우에는 허용될 수 있다.
1945. 8. 9.은 일본의 패망이 기정사실화된 시점으로, 그 이후 남한 내에 미군정이 수립되고 일본인의 사유재산에 대한 동결 및 귀속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 법적 상태는 매우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웠으므로 1945. 8. 9. 이후 조선에 남아 있던 일본인들이 일본의 패망과 미군정의 수립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반도 내에서 소유하거나 관리하던 재산을 자유롭게 거래하거나 처분할 수 있다고 신뢰하였다 하더
라도 그러한 신뢰가 헌법적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신뢰라고 보기 어렵다.
일본인들이 불법적인 한일병합조약을 통하여 조선 내에서 축적한 재산을 1945. 8. 9. 상태 그대로 일괄 동결시키고 그 산일과 훼손을 방지하여 향후 수립될 대한민국에 이양한다는 공익은, 한반도 내의 사유재산을 자유롭게 처분하고 일본 본토로 철수하고자 하였던 일본인이나, 일본의 패망 직후 일본인으로부터 재산을 매수한 한국인들에 대한 신뢰보호의 요청보다 훨씬 더 중대하다.
심판대상조항은 소급입법금지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헌법 제13조 제2항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심판대상조문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2호(1945. 9. 25. 공포) 제4조 본문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33호(1945. 12. 6. 공포) 제2조 전단 중 ‘일본 국민’에 관한 부분
참조조문
헌법 제13조 제2항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2호(1945. 9. 25. 공포) 제4조 단서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33호(1945. 12. 6. 공포) 제2조 후단
구 귀속재산처리법(1949. 12. 19. 법률 제74호로 제정되고, 1956. 12. 31. 법률 제42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구 귀속재산처리에 관한 특별조치법(1963. 5. 29. 법률 제1346호로 제정되고, 1964. 12. 31. 실효된 것) 제2조 제1호
구 귀속재산처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부칙(1963. 5. 29. 법률 제1346호) 제5조 제1항
참조판례
1. 헌재 1994. 6. 30. 92헌가18, 판례집 6-1, 557, 563-564 헌재 2001. 4. 26. 98헌바79등, 판례집 13-1, 799, 820-822
2. 헌재 1996. 2. 16. 96헌가2등, 판례집 8-1, 51, 87-89 헌재 2011. 3. 31. 2008헌바141등, 판례집 23-1상, 276, 305
당사자
청 구 인1. 김○○
2. 김□□
3. 정○○
청구인들 대리인 법무법인 평호 담당변호사 최정병 외 1인
당해사건울산지방법원 2017가소205205 부당이득금
주문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2호(1945. 9. 25. 공포) 제4조 본문과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33호(1945. 12. 6. 공포) 제2조 전단 중 ‘일본 국민’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이유
1. 사건개요
가. 청구인들은 2016. 11. 24. 울산 중구 ○○동 ○○ 구거 688㎡ 및 같은 동 □□ 도로 231㎡(이하 합쳐서 ‘이 사건 토지’라 한다)를 경매절차에서 낙찰 받아 그 소유권을 취득한 사람들이다. 청구인들은 2017. 4. 3. 울산광역시 중구가 아무런 권원 없이 이 사건 토지를 도로 포장 등의 방법으로 점유ㆍ사용하고 있으므로 그로 인한 부당이득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울산광역시 중구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울산지방법원 2017가소205205).
나. 이에 대하여 울산광역시 중구는, 이 사건 토지의 전 소유자인 김△△의 부친 김▽▽(창씨명 ☓☓)이 1945. 8. 10. 재조선 일본 국민(이하 ‘일본인’이라 한다)인 ◇◇으로부터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고 1945. 9. 7.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점, 1945. 9. 25. 공포된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이하 ‘미군정청 법령’이라 한다) 제2호에서 일본인의 모든 재산권 이전 행위를 금지함(제1조)과 동시에 1945. 8. 9. 이후에 체결한 재산권 이전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를 무효로 한 점(제4조), 1945. 12. 6. 공포된 미군정청 법령 제33호 제2조에서 1945. 8. 9. 이후 일본인의 모든 재산은 미군정청이 취득한다고 규정한 점, 1948. 9. 11.경 체결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의 재정 및 재산에 관
한 최초협정’(이하 ‘한ㆍ미간 최초협정’이라 한다) 제5조에 의하여 미군정청에 귀속되었던 일본인의 재산 중 그때까지 불하되지 않은 귀속재산은 대한민국정부에 이양된 점, 구 ‘귀속재산처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2조 제1호 및 같은 법 부칙 제5조에 의하여 1964. 12. 말일까지 매매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재산은 무상으로 국유화된 점을 주장하면서, 결국 이 사건 토지는 1964. 12. 말일까지 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실이 없으므로 국유의 재산이고 청구인들은 소유권 없는 자들로부터 이를 승계하였으므로, 청구인들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유효함을 전제로 한 청구인들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항변하였다.
다. 이에 청구인들은 위 소송 계속 중인 2017. 6. 19. 미군정청 법령 제2호 제4조, 미군정청 법령 제33호 제2조, 구 귀속재산처리법 제2조, 구 ‘귀속재산처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2조 제1호 및 같은 법 부칙 제5조 제1항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2018. 1. 2. 기각되자(울산지방법원 2017카기10033), 2018. 1. 23. 위 조항들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대상
청구인들은 미군정청 법령 제2호 제4조, 미군정청 법령 제33호 제2조 전부에 대하여 위헌확인을 구하고 있으나, 청구인들이 그 위헌성을 다투고자 하는 부분은 1945. 8. 9. 이후 ‘일본 국민’의 재산에 대한 거래를 모두 무효로 하고, 그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1945. 9. 25.자로 미군정청이 취득하도록 한 것이므로, 심판대상을 이에 관한 부분으로 한정한다.
한편 청구인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귀속재산 처리에 관한 조항들에 대하여는 그 고유의 위헌성을 주장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구 귀속재산처리법 제2조와 구 ‘귀속재산처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2조 제1호 및 같은 법 부칙 제5조 제1항은 심판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대상은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2호(1945. 9. 25. 공포) 제4조 본문(이하 ‘이 사건 무효조항’이라 한다)과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33호(1945. 12. 6. 공포. 이하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2호와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33호를 합쳐서 ‘이 사건 법령들’이라 한다) 제2조 전단 중 ‘일본 국민’에 관한 부분(이하 ‘이 사건 귀속조항’이라 한다. 이하 이 사건 무효조항과 이 사건 귀속조항을 합쳐서 ‘심판대상조항’이라 한다)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심판대상조항과 관련조항은 다음과 같다.
[심판대상조항]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2호(1945. 9. 25. 공포)
제4조 본 법령에 설명한 종류의 거래로서 1945년 8월 9일 이후에 성립된 것은 본 일로 전부 무효로 함. (단서 생략)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33호(1945. 12. 6. 공포)
제2조 1945년 8월 9일 이후 일본정부, 그 기관 또는 그 국민, 회사, 단체, 조합, 그 정부의 기타 기관 혹은 그 정부가 조직 또는 관리한 단체가 직접 간접으로 혹은 전부 또는 일부를 소유 또는 관리하는 금, 은, 백금, 통화, 증권, 은행계정, 채권, 유가증권 또는 본 군정청의 관할 내에 존재하는 기타 전 종류의 재산 및 그 수입에 대한 소유권은 1945년 9월 25일부로 조선군정청이 취득하고 조선군정청이 그 재산 전부를 소유함. (후단 생략)
[관련조항]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2호(1945. 9. 25. 공포)
제4조 (본문 생략) 단 조선정부에 대하여 유효신청과 거래에 관한 명세서, 지불한 보수금 및 인물, 재산, 기타 관계사실을 제출하면 당해 거래는 유효케 될 수 있음.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33호(1945. 12. 6. 공포)
제2조 (전단 생략) 누구를 불문하고 군정청 허가 없이 그 재산에 침입 또는 점유하고 그 재산의 이전 또는 그 재산의 가치, 효용을 훼손함으로 함.
구 귀속재산처리법(1949. 12. 19. 법률 제74호로 제정되고, 1956. 12. 31. 법률 제42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본법에서 귀속재산이라 함은 단기 4281년(1948년) 9월 11일부 대한민국정부와 미국정부간에 체결된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협정 제5조의 규정에 의하여 대한민국정부에 이양된 일체의 재산을 지칭한다. 단, 농경지는 따로 농지개혁법에 의하여 처리한다. 단기 4278년(1945년) 8월 9일 이전에 한국 내에서 설립되어 그 주식 또는 지분이 일본기관, 그 국민 또는 그 단체에 소속되었던 영리법인 또는 조합기타에 대하여서는 그 주식 또는 지분이 귀속된 것(이하 귀속된 주식 또는 지분이라 칭한다)으로 간주한다. 단기 4278년(1945년) 8월 9일 이전에 한국 내에서 설립되어 그 이사행사권 또는 사원권이 일본기관, 그 국민 또는 그 단체에 소속되었던 재단법인 또는 사단법
인에 대하여서는 그 이사행사권 또는 사원권도 귀속된 것(이하 귀속된 이사행사권 또는 사원권이라 칭한다)으로 간주한다.
구 귀속재산처리에 관한 특별조치법(1963. 5. 29. 법률 제1346호로 제정되고, 1964. 12. 31. 실효된 것)
제2조(용어의 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귀속재산”이라 함은 귀속재산처리법 제2조에 규정된 재산을 말한다.
구 귀속재산처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부칙(1963. 5. 29. 법률 제1346호)
제5조(국유화조치) ① 1964년 12월 말일까지 매매계약이 체결되지 아니한 귀속재산은 무상으로 국유로 한다. 1964년 12월 말일까지 매매계약이 체결된 귀속재산으로서 1965년 1월 1일 이후 그 매매계약이 해제된 귀속재산도 또한 같다.
[위 심판대상조항 및 관련조항의 내용은, 법원도서관 발행,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법령, 『재판자료』제42집(1988)에 수록된 것을 기준으로 하되, 옛 용어인 ‘취인(取引)’, ‘취체(取締)’, ‘은행감정(銀行勘定)’을 각 ‘거래’, ‘관리’, ‘은행계정’으로, 일본어 표현인 ‘기(基)’, ‘우는(又는)’, ‘급(及)’을 각 ‘그’, ‘또는’, ‘및’으로 바꾸어 표기한 것이다.]
3. 청구인들의 주장 요지
가. 심판대상조항은 1945. 9. 25., 1945. 12. 6. 각 공포되었음에도 1945. 8. 9. 이후에 성립된 거래를 전부 무효로 하고, 1945. 8. 9. 이후 일본 국민이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재산을 1945. 9. 25.자로 전부 미군정청이 취득하도록 정하고 있어서 소급입법금지원칙에 위반된다.
나. 심판대상조항은 적국(敵國)의 재산을 몰수함으로써 일본 정부에 전쟁 책임을 묻기 위한 것임에도 침략전쟁과 무관한 순수 일본 국민의 사유재산까지 몰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그 일시를 소급함으로써 일본 국민으로부터 재산을 적법하게 취득한 한국인의 재산까지 예외 없이 전부 몰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
4. 적법요건에 대한 판단
가. 미군정기의 법령체계
일본국 패망 후 태평양 미국육군사령부 최고지휘관인 맥아더는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지역에 군정실시기관으로서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이하 ‘미군정청’이라 한다)을 창설하고, 1945. 9. 7. 태평양 미국육군사령부 포고 제1호(이하 ‘포고 제1호’라 한다) 제6조를 통하여 포고, 법령, 규약, 고시 또는 조
례의 제정권한이 미군정청에 속함을 선언하였다.
포고(Proclamation)는 태평양 미국육군사령부 최고지휘관인 맥아더의 이름으로 발하는 것으로 군사점령에 관한 국제법에 근거하여 한국 내 기본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진다. 미군정청 법령(Ordinance)은 미군정청이 군정장관의 이름으로 발하는 것으로 문서 말미에 담당자의 계급 및 성명을 밝히고 서명을 하는 형태로 공포되었다.
당시 군정장관이 제정한 법령 기타 법규의 공포방식에 관하여는 이를 규율하는 법규가 없었고, 그로 인하여 오늘날 법률로 제정되어야 할 사항 중 많은 부분이 ‘법령 기타 법규’의 형식으로 제정되었으며, 그 공표절차에 있어서는 관보 게재의 방식에 의하거나 관보게재 외의 방식에 의하기도 하였다. ‘법령 기타의 법규’의 형식을 가졌다고 하여 반드시 ‘법률’보다 하위의 규범인 것은 아니었고, 그 내용이 입법사항에 관한 것이라면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었다(헌법위원회 1954. 2. 27. 1953헌위1; 헌재 2001. 4. 26. 98헌바79등 참조).
나. 헌법소원대상성 및 재판의 전제성
(1) 이 사건 법령들은 1945. 9. 25., 1945. 12. 6. 각 군정장관의 명의로 공포된 것으로 법령(Ordinance)의 형식을 가졌지만, 각 ‘패전국 정부 등의 재산권 행사 등의 금지에 관한 사항’, ‘재산권 이전 조치에 관한 사항’과 같이 오늘날 법률로 제정되어야 할 입법사항을 규율하고 있으므로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 사건 법령들은 미군정이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 8. 15.을 기준으로 그 효력을 상실하였으나, 1948. 7. 12. 제정된 제헌 헌법 제100조가 “현행 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법질서 내로 편입되었다.
그 후 1961. 7. 15. 제정된 ‘구법령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1948. 7. 16. 이전에 시행된 법령으로서 헌법 제100조의 규정에 의하여 그 효력이 존속되고 있는 구법령을 1961. 12. 31.까지 정리하여 이를 법률 또는 명령으로 대체하도록 하였고(제1조 및 제2조), 정리되지 아니한 구법령은 1962. 1. 20.로써 폐지한 것으로 간주하였다(제3조). 이에 따라 이 사건 법령들은 1962. 1. 20.로써 폐지되었다.
(2) 폐지된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은 원칙적으로 부적법하나, 폐지된 법률의 위헌 여부가 관련 소송사건의 재판의 전제가 되어 있다면 위헌심판의 대상이
된다(헌재 1994. 6. 30. 92헌가18 참조).
당해사건에서는 한국인이 1945. 8. 10. 일본인으로부터 매수하여 1945. 9. 7.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이 사건 토지가 심판대상조항에 따라 귀속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계쟁 토지가 귀속재산인지 여부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1945. 8. 9. 현재 등기부상 일본인 소유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은 미군정청 법령 제33호 제2조에 의하여 미군정청이 취득하였다가 한ㆍ미간 최초협정 제5조에 의하여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된 귀속재산이 되는 것이므로, 가사 그 이전에 이미 한국인이 일본인으로부터 매수 기타 원인으로 그 소유권을 취득하였다고 하더라도 소정 기간 내에 그 취득원인 사실을 들어 미군정청 법령 제103호와 1948. 4. 17.자, 1948. 7. 28.자 각 군정장관지령에 의한 재산소청위원회에서의 귀속해제의 재결 또는 간이소청절차에 의한 귀속해제결정 및 법률 제102호, 제230호에 의한 확인을 받거나 혹은 법원으로부터 확정판결에 의한 귀속해제를 받지 아니하는 한 그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고, 그 소유권은 국가에 귀속된다.”(대법원 1996. 11. 15. 선고 96다32812 판결 등 참조)고 판시하여 오고 있다.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법률로서의 효력을 가지고 시행되었고 이후 폐지된 조항이지만 계쟁 토지가 귀속재산인지 여부와 관련하여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재판규범으로서 적용되고 있고, 당해사건 재판에서도 이 사건 토지가 심판대상조항에 따라 귀속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당해 사건 재판의 결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심판대상조항은 헌법소원대상성 및 재판의 전제성이 모두 인정된다.
5. 본안에 대한 판단
가. 심판대상조항의 내용
이 사건 무효조항은 “본 법령에 설명한 종류의 거래로서 1945년 8월 9일 이후에 성립된 것은 본 일로 전부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 사건 귀속조항은 “1945년 8월 9일 이후 일본 … 국민 …이 직접 간접으로 혹은 전부 또는 일부를 소유 또는 관리하는 금, 은, 백금, 통화, 증권, 은행계정, 채권, 유가증권 또는 본 군정청의 관할 내에 존재하는 기타 전 종류의 재산 및 그 수입에 대한 소유권은 1945년 9월 25일부로 조선군정청이 취득하고 조선군정청이 그 재산 전부를 소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 무효조항과 이 사건 귀속조항이 ‘1945. 8. 9. 이후’의 일본인 소유재산을 규율대상으로 한 취지는, 물권변동에 관한 공시방법을 기준으로 하여
1945. 8. 9. 현재의 상태에서 일본인 재산의 소유권을 미군정청에 귀속시키고자 함에 있다고 할 것이므로, ‘1945년 8월 9일 이후’라 함은 ‘1945. 8. 9. 00:00’을 기준으로 하여 한국인이 그 이전에 일본인으로부터 재산을 매수하였다 하더라도 1945. 8. 9. 00:00 이후에까지 아직 일본인 명의로 그 소유권을 표상하는 등기가 되어 있다면, 해당 재산은 1945. 9. 25.자로 미군정청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대법원은 1989. 12. 26. 선고 87다카2176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 사건 귀속조항에 따른 미군정청의 소유권 취득은 원시적 취득이며, 이른바 법률의 규정에 의한 취득으로서 등기 기타 대항요건을 필요로 하지 아니한다(대법원 1969. 1. 21. 선고 68다1754 판결; 대법원 1989. 12. 26. 선고 87다카2176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나. 판단
(1) 쟁점의 정리
(가) 이 사건 법령들은 1945. 9. 25., 1945. 12. 6. 각 공포되었음에도 이 사건 무효조항은 1945. 8. 9.을 기준으로 하여 일본인 소유의 재산에 대한 거래를 전부 무효로 하고 있고, 이 사건 귀속조항은 이 사건 무효조항의 적용대상이 되는 일본인 재산을 1945. 9. 25.로 소급하여 전부 미군정청의 소유가 되도록 정하고 있어서, 진정소급입법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헌법 제13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하여 소급입법을 금지하고 있다. 이 사건 법령들이 제정ㆍ공포될 당시에는 위 조항과 같은 헌법 규정이 존재하지 아니하였으나,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법령들은 제헌 헌법 제100조에 의하여 대한민국 법질서 내로 편입되었고, ‘구법령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1조 내지 제3조에 따라 1962. 1. 20. 폐지되었음에도 귀속재산의 처리와 관련하여 여전히 유효한 재판규범으로서 실질적 규범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현행 헌법에 따라 소급입법금지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나) 한편 청구인들은 심판대상조항이, 과거 일본 국민의 재산이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이 일본 국민으로부터 적법하게 취득한 재산까지 몰수하는 것이어서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심판대상조항은 일본인 등이 소유 또는 관리하는 재산의 산일(散逸)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체의 거래를 금지하고 이를 미군정청에 귀속하게 한 조항으로 한국인이 일본인으로부터 취득한 재산을 몰수하는 내용이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인이
일본인으로부터 취득한 재산임에도 심판대상조항에 따라 귀속재산으로 인정되어 재산권이 제한될 수도 있으나, 이는 소급입법으로 인한 부수적인 결과에 불과하다. 결국 청구인들의 위 주장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재산권이 박탈당하였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므로, 이에 대하여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한다.
(2) 심판대상조항이 소급입법금지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
(가) 소급입법은 새로운 입법으로 이미 종료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작용하도록 하는 진정소급입법과 현재 진행 중인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작용하도록 하는 부진정소급입법으로 나눌 수 있는바, 부진정소급입법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만 소급효를 요구하는 공익상의 사유와 신뢰보호의 요청 사이의 교량과정에서 신뢰보호의 관점이 입법자의 형성권에 제한을 가하게 되는 데 반하여, 진정소급입법은 개인의 신뢰보호와 법적 안정성을 내용으로 하는 법치국가원리에 의하여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헌법적으로 허용되지 아니하는 것이 원칙이나 예외적으로 법적 상태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웠거나 하여 보호할 만한 신뢰의 이익이 적은 경우, 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 정당화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헌재 1996. 2. 16. 96헌가2등; 헌재 2011. 3. 31. 2008헌바141등 참조).
(나) 심판대상조항은 물권변동에 관한 공시방법을 기준으로 1945. 8. 9. 현재의 상태에서 일본인이 소유ㆍ관리하던 재산을 동결시키고, 1945. 9. 25.자로 그 소유권을 미군정청에 귀속시키는 취지의 조항들이다. 일본인이 소유ㆍ관리하던 재산에 대한 동결시점을 각 법령들의 공포 시점이 아니라 1945. 8. 9.로 정한 취지는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관련 기록에 따르면 1945. 8. 9.은 미국 육군항공대가 나가사키에 제2차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사실상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시점이면서 동시에 일본의 최고전쟁지도회의구성원회의에서 연합국 정상들이 일본에 대하여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선언의 수락이 기정사실화된 시점이다.
1945. 8. 15. 일본 정부의 무조건적인 항복 선언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한반도는 일본제국으로부터 분리되었으나, 당시 한반도에는 독립적인 정부나 입법기관이 부재하였다. 1945. 9. 7. 포고 제1호에 의하여 북위 38도선 이남에 미군정이 수립되고, 1945. 9. 20. 정식으로 미군정청이 설립된 이후인 1945. 9. 25.에야 비로소 미군정청 법령 제2호가 발령됨으로써, 일본의 패망이 기정사실화된 1945. 8. 9.을 기준으로 패전국 일본의 한반도 내 재산이 동결되고 그 이전이 제한되었다.
그러나 1945. 8. 9.자로 동결된 재조선 일본인의 사유재산의 처리와 귀속에 대하여서는 당시 명확한 국제법규가 존재하지 아니하였다. 점령국에 관한 국제법규인 ‘육전의 법 및 관례에 관한 협약’(1907. 10. 18. 서명, 1910. 1. 26. 발효) 제46조는 “가문의 명예 및 권리, 개인의 생명 및 사유재산과 종교적 신념 및 그 행사는 존중되어야 한다. 사유재산은 이를 몰수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으나, 일본 본토와 달리 한반도는 점령국인 일본으로부터 분리ㆍ독립된 지역이어서 한반도에 남아 있는 일본인에게도 점령국에 관한 국제법 조항이 그대로 준용된다고 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한반도에 남아 있는 일본인 재산은 불법적인 한일병합조약에 따라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하여 축적한 재산으로서, 일제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 통치의 유산이므로 미군정에 의하여 일본인이 소유ㆍ관리하던 재산에 대한 보전 및 귀속 조치가 불가피하였다. 이에 미군정청은 1945. 12. 6. 미군정청 법령 제33호를 공포함으로써, 앞서 미군정청 법령 제2호에 의하여 동결된 일본인 재산을 1945. 9. 25.자로 전부 미군정청에 귀속시켰다.
이와 같은 사정을 고려할 때, 1945. 8. 9. 이후 남한 내에 미군정이 수립되고 이 사건 법령들이 제정ㆍ공포됨으로써 일본인이 소유ㆍ관리하던 재산에 대한 동결 및 귀속조치가 이루어지기까지 법적 상태는 매우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웠으므로, 당시 재조선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일본의 패망과 미군정의 수립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이 소유ㆍ관리하던 재산의 자유로운 처분이나 거래가 가능할 것이라고 신뢰하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신뢰가 헌법적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신뢰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 포고 제1호는 “장기간 조선인이 노예상태에 있었다는 사실과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ㆍ독립시킬 것이라는 결정을 고려하여 조선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조항의 이행과 조선인의 인권 및 종교적 권리를 보호함에 있음”을 명시함으로써, 미군정의 한반도 점령 목적이 일본에 의하여 점령되었던 영토를 임시적으로 관리ㆍ보전함으로써 한반도의 자주ㆍ독립과 국가의 재건을 돕는 데에 국한된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심판대상조항이 소급입법을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은 포고 제1호에서 명시한 미군정의 한반도 점령 목적에 합치하도록 해석되어야 할 것인바, 비록 심판대상조항이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에 의한 일본인 재산의 무단 점유나 임의적인 처분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더라도 이는 1945. 8. 9. 포츠담 선언의 수락으로 한반도 내 통치권을 상실한 일본의 영향력을 즉각적으로 차단하고,
일본인이 불법적인 한일병합조약을 통하여 조선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하여 축적한 재산을, 일본의 패망이 기정사실화된 1945. 8. 9. 상태 그대로 일괄 동결시키고 그 산일과 훼손을 방지하여 향후 수립될 대한민국 정부에게 이양하기 위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불법적인 한일병합조약으로 인해 조선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하여 축적한 재산을 보전하고 이양한다는 공익은, 한반도 내의 사유재산을 자유롭게 처분하고 일본 본토로 철수하고자 하였던 재조선 일본인이나 일본의 패망 직후 일본인으로부터 재산을 매수한 사람들에 대한 신뢰보호의 요청보다 훨씬 더 중대하다.
(라)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군정청에 의한 한반도 내의 일본인 소유ㆍ관리 재산의 동결 및 귀속처리는 역사적으로 매우 특수하고 이례적인 조치이므로, 소급입법의 합헌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계기로 진정소급입법이 빈번하게 발생해 그로 인한 폐해가 만연될 것이라는 우려는 충분히 불식될 수 있다.
(마) 이상의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심판대상조항은 소급입법금지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헌법 제13조 제2항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6. 결론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모두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므로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재판관 유남석 이선애 이석태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