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2012. 4. 24. 2010헌마362 [기각]
출처
헌법재판소
기소유예처분취소
(2012. 4. 24. 2010헌마362)
판시사항
절도 혐의를 인정한 기소유예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이유 없다고 기각한 사례
결정요지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본 후 세면대에서 잠시 손을 씻는 동안 소변기 위 거울 앞에 우산을 놓아 두었던 것에 불과하므로, 청구인이 가져간 우산은 여전히 피해자의 점유 하에 있었다고 볼 것인 점, 청구인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해자가 우산을 화장실에 두고 온 사실을 상기하고 바로 되돌아온 점 등에 비추어 위 우산에 대하여 여전히 피해자의 점유가 계속되고 있었다고 볼 것인 점 등을 종합하면 청구인이 위 우산을 가져갈 당시 우산이 ‘타인의 점유’ 하에 있었다고 본 피청구인의 판단이 현저히 자의적인 것으로서 합리성을 결여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또한, ‘마침 비가 오는 날’에 ‘순간적인 물욕’으로 우산을 집게 되었다는 등의 청구인 진술에 의할 경우, 청구인에게 ‘재물의 타인성’을 전제로 한 절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본 피청구인의 판단이 현저히 자의적, 또는 불합리한 것이었다고도 할 수 없다.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이동흡, 재판관 목영준, 재판관 이정미의 반대의견
청구인이 우산을 가져갈 당시 위 우산은 공중의 출입이 자유롭고 빈번하여 장소의 관리자가 배타적 지배를 충분히 할 수 없는 장소인 지하철역 화장실에 유류된 것으로서 피해자의 점유가 계속하여 인정된다거나, 지하철역 관리자가 점유를 개시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청구인은 우산이 주인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들고 오게 된 것인 점 등을 고려할 때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은 청구인이 위 우산을 취거할 당시 우산에 대한 타인의 점유가 인정되는지, 청구인에게 위 우산에 대한 불법영득의사 및 절도의 고의가 인정되는지에 관하여 좀 더 밝혀보았어야 할 것임에도, 이를 다하지 아니한 채 절도죄의 혐의를 인정하고 이에 대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함으로써 중대한 수사미진 또는 법리오해의 잘못을 저질렀다.
참조조문
헌법 제10조, 제11조
형법(2010. 4. 15. 법률 제10259호로 개정된 것) 제329조(절도)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참조판례
대법원 1999. 11. 12. 선고 99도3801 판결
대법원 2000. 10. 13. 선고 2000도3655 판결
대법원 2007. 3. 15. 선고 2006도9338 판결
당사자
청 구 인이○환 대리인 법무법인 한울 담당변호사 김용대 외 1인
피청구인부산지방검찰청 검사
주문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한다.
이유
1. 사건의 개요
가. 청구인은 2010. 2. 26. 부산 중구 남포동 6가에 있는 ‘자갈치역’의 남자화장실에서 소변기 위에 놓인 피해자 조○현 소유의 시가 1만 원 상당의 우산 1개를 가져가 절취하였다는 혐의로 2010. 3. 23. 피청구인으로부터 기소유예처분을 받
았다(부산지방검찰청 2010형제20916호, 이하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이라 한다).
나. 이에 청구인은, 위와 같은 절도 사실이 없는데도 피청구인이 ‘혐의없음’의 불기소처분을 하지 아니하고, 위와 같은 피의사실을 인정하여 기소유예처분을 함으로써 자신의 평등권 등을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면서, 2010. 6. 8.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청구인의 주장 및 피청구인의 답변
가. 청구인의 주장 요지
청구인은 이 사건 피의사실 기재 일시, 장소에서 우산을 가지고 나온 사실은 있으나, 누군가가 위 우산을 버리고 간 것으로 오인하여 가져가려 하였던 것이므로, 절취의 고의가 없었다. 가사 불법영득의 의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위 우산은 유실물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점유이탈물횡령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청구인의 행위가 절도죄에 해당함을 전제로 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은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다.
나. 피청구인의 답변 요지
이 사건 피해품인 우산의 양호한 상태, 이 사건 당시 비가 내리고 있었던 사정 및 이 사건 직후의 수사 과정에서 청구인 스스로도 위 우산이 실질적인 재산가치가 있었음을 인정하였던 점 등을 종합하면, 위 우산을 버려진 물건으로 알았다는 청구인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고, 청구인의 절도의 범의가 충분히 인정된다.
나아가, 점유이탈물 해당 여부는 행위자의 주관적 인식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객관적인 법률판단을 할 문제이며, 이 사건의 경우 위 우산은 여전히 피해자 또는 지하철역 관리주체에게 그 점유를 인정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으므로, 청구인의 이 사건 행위가 절도죄를 구성하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3. 판 단
가. 피청구인은 청구인의 행위가 절도죄에 해당함을 전제로 위 피의사실에 대한 혐의를 인정하고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하였다. 이에 대하여 청구인은 이 사건 우산을 누군가가 버리고 간 것이라고 오인하여 가지고 갔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첫째, 청구인이 위 우산을 가지고 갔을 당시 위 우산에 대하여 ‘타인의 점유’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둘째, 그 당시 청구인에게 불법영득의사 또는 ‘타인의 소유’인 우산을 절취한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볼 것인지 여부라고 할 것이다.
나. 청구인이 위 우산을 가져갈 당시 ‘타인의 점유’가 인정되는지 여부
이 사건 수사기록에 의하면, 피해자는 “소변이 마려워 지하철역 화장실에 내려가 소지하고 있던 우산을 그 곳 (소변기 위)거울 앞에 세워두고 소변을 본 후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우산을 둔 곳으로 가려고 하니 어떤 사람(청구인)이 우산을 가방에 집어넣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진술하는바(수사기록 7면), 이에 의하면, 피해자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본 후 세면대에서 잠시 손을 씻는 동안 소변기 위 거울 앞에 우산을 놓아두었던 것에 불과하므로, 위 우산은 여전히 피해자의 점유 하에 있었다고 볼 것이다.
이에 대하여 청구인은, “화장실 변기 위에 물건을 올려놓는 곳에 우산이 하나 있었다. 위 우산을 다른 사람이 실수로 놓아두고 간 것으로 생각하고 비도 오고 해서 생각없이 우산을 들고 나오다 우산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왔다”고 진술하거나(수사기록 14면), “마침 화장실 소변기 위 선반에 접힌 우산이 하나 있었고, 용변을 다 본 뒤에도 화장실 내에 다른 사람도 다 나가고 없길래 순간적인 물욕으로 그 우산을 집고 말았다. 그러자 마치 밖에서 기다리기나 한 듯 한 사람이 급히 달려들어” 왔다고 진술하는바(수사기록 25면), 이러한 청구인의 진술에 의할 경우 ‘타인의 점유’ 인정 여부가 달라질 것인지를 보기로 한다.
살피건대, 어떤 물건이 타인의 점유 하에 있다고 할 것인지의 여부는, 객관적인 요소로서의 관리범위 내지 사실적 관리가능성 외에 주관적 요소로서의 지배의사를 참작하여 결정하되, 궁극적으로는 당해 물건의 형상과 그 밖의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사회통념에 비추어 규범적 관점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할 것이고(대법원 1999. 11. 12. 선고 99도3801 판결 참조), 특히 유류물의 경우 그 물건의 점유자가 두고 온 장소를 알고 있어서 다시 찾을 수 있는 경우에는 주관적 요소로서의 지배의사 및 사회적․규범적 요소에 의하여 그 물건의 점유자의 점유를 인정함이 상당하다. 나아가 그 물건에 대한 점유자의 점유가 상실되었다 하더라도 그 물건이 다른 사람의 지배범위 내에 존재할 때에는 그 사람의 새로운 점유가 개시되는바, 그 장소에 대한 지배의사는 일반적, 포괄적, 잠재적 지배의사로 파악하여 관리자가 그 물건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관리자의 점유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7. 3. 15. 선고 2006도9338 판결 참조).
이에 의하여 이 사건의 경우를 보건대, 청구인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피해자는 위 우산을 둔 채 잠시 화장실을 떠났지만, 우산을 두고 온 사실을 상기하고
우산을 찾기 위해 급히 되돌아온 점, 위 장소가 지하철역 구내에 설치된 화장실로 이 사건 당시 비가 내리고 있어서 피해자가 우산을 두고 온 것을 깨닫고 다시 찾으러 올 때까지의 시간적, 공간적 간격이 그리 길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인 점 등을 종합하면, 청구인이 위 우산을 가져갈 당시 위 우산에 대하여 여전히 피해자의 점유가 계속되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는 절도의 객관적 구성요건에 관한 문제로서 행위자의 인식 여부와 무관하게 결정되어야 하는 구성요건요소인 점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나아가, 가사 위 우산에 대한 피해자 자신의 점유가 상실된 상태였다고 보는 경우에도, 위 우산이 지하철역 구내에 일시적으로 유류된 상태였다면, 지하철역 관리자의 위 장소에 대한 지배의사는 일반적, 포괄적, 잠재적 지배의사라고 봄이 상당하므로, 지하철역 관리자가 위 우산을 발견하였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위 우산은 지하철역 관리자의 점유 지배하에 있었다고 볼 것이다.
그렇다면 가사 청구인 자신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청구인이 위 우산을 가져갈 당시에 위 우산이 ‘타인의 점유’하에 있었다고 본 피청구인의 판단이 현저히 자의적인 것으로서 합리성을 결여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다. 청구인이 위 우산을 가져갈 당시 불법영득의사 또는 ‘절취의 고의’가 인정되는지 여부
절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불법영득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 처분하려는 의사이다(대법원 2000. 10. 13. 선고 2000도3655 판결).
이 사건 수사기록에 의하면, 청구인은 “비가 오지를 않아 우산 없이 나섰는데 그 시각 즈음에는 마침 비가 내리는 지라 문현역무실에서 우산을 빌려쓰기로 하고 마음을 먹고 있던 참이었다”고 진술하고(수사기록 25면), “그 우산을 가져 나오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오늘 비도 오고 해서” 우산을 들고 나오려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수사기록 15면). 이에 의하면, 청구인은 비가 오는 상황에서 위 우산이 실질적인 재산적 사용가치가 있음을 전제로 위 우산을 사용하기 위하여 가져가려 하였던 것으로 봄이 상당하고, 청구인이 이 사건 우산을 일시적으로만 사용하고 소유자에게 반환할 의사로 가져갔다고 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청구인에게 위 우산에 대한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한 피청구인의 판단이 현저히 자의적 또는 불합리한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절도죄의 고의는 타인이 점유하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다는 데 대한 인식과 의사라고 할 것인바, 이는 반드시 직접적 고의임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미필적 고의로도 충분하다. 이 사건에서 문제되고 있는 “재물의 타인성” 역시 규범적 구성요건요소로서 고의의 내용이 되나, 이에 대해서는 문외한으로서의 소박한 인식이 있으면 충분하다.
이 점과 관련하여, 청구인은 “화장실 변기 위에 물건을 올려놓는 곳에 우산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저는 그 우산을 다른 사람이 실수로 놓아두고 간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진술하고(수사기록 14면), “제가 그 우산을 가져 나오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오늘 비도 오고 해서” 가져 나오게 되었다고 진술하며(수사기록 15면), “용변을 다 본 뒤에도 화장실 내에 다른 사람도 다 나가고 없길래 순간적인 물욕으로 그 우산을 집고 말았다”고 진술하고 있다(수사기록 25면). 이러한 진술에 비추어 볼 때, 청구인은 위 우산이 타인의 소유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청구인에게 ‘재물의 타인성’을 전제로 한 절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본 피청구인의 판단이 현저히 자의적, 또는 불합리한 것이었다고 할 수 없다.
한편, 타인이 그 소유권을 포기하고 버린 물건으로 오인하여 취득하고 그와 같이 오인한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인정되는 한 절도의 범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나(대법원 1989. 1. 17. 선고 88도971 판결), 청구인과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면 이 사건 범행 당시 비가 내리고 있었던 점(수사기록 7, 25면), 이 사건 우산의 양호한 상태(수사기록 21면, 사진) 등 여러 객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청구인이 위 우산을 타인이 소유권을 포기하고 버린 물건으로 오인하는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할 것이다.
라. 현저히 불공정한 수사 또는 수사미진의 잘못이 있었는지 여부
이 사건은 경찰 수사단계에서 피해자의 진술조서와 청구인의 피의자신문조서가 작성되고, 피해품에 대한 수사보고가 있었다. 그 외에, 검찰 수사단계에서는 별다른 수사가 진행되지 아니하였으나, 청구인이 화장실에서 우산을 들고 나온 사실을 인정하고 있어 사실관계 자체에 대하여는 주장이 충돌하는 사안이 아니었던 점, 청구인이 검찰 수사 단계에서 자필 탄원서를 제출하여 ‘순간적인 물욕으로 큰 잘못’을 범하였음을 시인하며 선처를 호소하였던 점, 피청구인이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여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피의사실 인정 여부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현저히 불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졌다거나 또는 중대한 수사미진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마. 소결
이상을 종합하여 볼 때, 피청구인이 청구인의 절도죄가 인정됨을 전제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함에 있어서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수사를 하였다거나, 헌법의 해석, 법률의 적용 또는 증거판단에 있어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잘못이 있었다고는 보이지 아니하며, 달리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이 헌법재판소가 관여할 정도의 자의적인 처분이라고 볼 자료도 없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청구인이 주장하는 기본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
4. 결 론
그렇다면 이 사건 심판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아래 5.와 같은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이동흡, 재판관 목영준, 재판관 이정미의 반대의견을 제외한 나머지 관여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5. 재판관 이강국, 재판관 이동흡, 재판관 목영준, 재판관 이정미의 반대의견
우리는 다수의견과 달리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이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여 취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아래와 같이 반대의견을 밝힌다.
가. 절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재물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점유를 배제하고 자기 또는 제3자의 점유로 옮기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점유자가 물건을 두고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 경우에 위 물건이 여전히 점유자의 점유 하에 있다고 할 것인지의 여부는 객관적인 요소로서의 관리범위 내지 사실적 관리가능성 외에 주관적 요소로서의 지배의사를 참작하여 결정하되 궁극적으로 당해 물건의 형상과 그 밖의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사회통념에 비추어 규범적 관점에서 판단하여야 한다.
특히, 지하철 등 공중의 출입이 자유롭고 빈번하여 장소의 관리자가 배타적 지배를 충분히 할 수 없는 장소에 유류한 물건은 지하철 역사 관리자 등 관리자가 이를 현실적으로 발견하지 않는 한 사회통념상 점유이탈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93. 3. 16. 선고 92도3170 판결 등 참조). 또한, 우리와 형법의 법조문이 유사한 외국의 판례 중에는 공중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개점중의 대규모 슈퍼마켓 6층의 벤치 위에 지갑을 두고 잊어버린 채 지하1층으로 이동하여 지갑만을 두고 약 10분간 방치한 경우에 물건을 두고 잊어버린 자의 점유는 부정되고 점유이탈물이 된다고 본 사례도 있다.
이 사건으로 돌아와 살피건대, 이 사건은 청구인이 지하철역 화장실에 놓인 피해자의 우산을 들고 갔다는 피의사실에 대하여 절도죄가 성립됨을 전제로 기소유예 처분을 한 사안이다. 반면, 청구인은 아무도 없는 지하철역 화장실에 우산이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되어 위 우산을 들고 나오다가 피해자를 마주치
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바(수사기록 14면, 25면), 이와 같은 청구인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청구인이 위 우산을 가져갈 당시 위 우산은 공중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지하철역 화장실에 유류된 것으로서 피해자의 점유가 계속하여 인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고, 나아가 위 지하철역 관리자가 위 우산을 현실적으로 발견하였다는 사정이 보이지 않는 한 지하철역 관리자가 이에 대한 점유를 개시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할 것이다.
결국 피청구인이 청구인의 행위를 절도죄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청구인이 우산을 가져갈 당시 피해자의 점유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할 증거가 있어야 한다. 비록 피해자는 소변을 보기 위하여 지하철역 화장실에 들어와 거울 앞에 위 우산을 세워두고 소변을 본 후 손을 씻고 우산을 둔 곳으로 갔을 때 청구인이 우산을 집어서 가져가려 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으나(수사기록 7면), 피해자는 이 사건 발생 당시 술을 마신 직후인 사정이 피해자의 진술에 의해서도 인정되는 점(수사기록 7면), 청구인은 이 사건 발생 후 피해자에게 계속 용서를 구하고 이해해 줄 것을 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술에 취한 채로 시비를 계속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수사기록 16면), 청구인은 위와 같은 상황을 모면하고자 역무실로 가게 되었는데 피해자는 “당신같은 우산 도둑놈하고는 이야기 할 것이 없다. 나는 전과자다. 너도 전과자 한번 되어 보라.”고 하면서 경찰서에 신고를 하게 된 것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점(심판기록 3면) 등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의 위와 같은 진술만으로 청구인의 진술을 배척하기는 충분하지 아니하다.
따라서 피청구인으로서는 청구인이 위 우산을 가져갈 당시 피해자가 위 우산에 대한 관리범위를 벗어난 것인지, 피해자가 위 우산을 놓아두고 위 장소를 이탈한 것이라면 다시 찾으러 올 때까지 이동한 거리와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등에 관하여 구체적 사실관계를 좀 더 수사한 후 위 우산에 대하여 여전히 피해자의 점유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가려야 함에도 이에 대한 별다른 수사나 입증 없이 만연히 위 우산에 대한 ‘타인의 점유’를 인정하였는바, 청구인의 행위에 대하여 점유이탈물횡령죄를 적용할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이에 대하여 절도죄를 적용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은 현저한 수사미진 또는 중대한 법리오해에 의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나. 한편, 절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불법영득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사용하고 처분하려는 의사이다. 따라서 불법영득의사는 먼저 재물의 타인성에 대한 인식 유무를 명확히 하여야 한다. 또한, 타인이 그 소유권을 포기하고 버린 물건으로 오인
하여 취득하였다면 이와 같이 오인한 데에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는 한 절도의 범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1989. 1. 17. 선고 88도971 판결).
살피건대, 청구인은 우산을 보고 주인 없는 우산으로 생각하고 우산을 들고 나오게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수사기록 15면), 앞서 살펴본 청구인의 진술대로 아무도 없는 지하철역 화장실에 우산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그 객관적 상황으로 보아 그 우산은 소유자가 소유권을 포기하고 버린 물건으로 오인될 소지가 없지 않은 점, 통상 이 사건 우산과 같은 우산의 시가는 1만 원 미만으로 위 우산이 사용된 것임을 고려하면 그 교환가치는 그보다 더 낮다고 볼 수 있는 점, 청구인은 이 사건 당시까지 다른 죄를 저지른 전력이 전혀 없고, 약 32년 동안 계속하여 한 회사에서 근무해 오면서, 이 사건 당시 부장의 직에서 이사 승진을 앞두고 있었으며, 일정한 소득이 인정되는 사정 등에 비추어 볼 때 위 우산이 타인의 물건이라고 인식하였다면 이를 가져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이는 점 등 청구인에게는 위 우산을 가져갈 당시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 충분하고, 나아가 위 우산을 누군가가 버리고 간 것, 즉 무주물로 인식하여 ‘재물의 타인성’을 인식하지 못하였을 수 있다.
따라서 피청구인으로서는 위 우산이 놓여 있는 객관적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 과연 청구인에게 절도의 범의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별다른 수사나 입증 없이 만연히 청구인에게 절도의 고의가 인정됨을 전제로 절도죄의 피의사실을 인정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하였는바, 이는 중대한 수사미진에 의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다. 결국 피청구인으로서는 청구인에 대한 피의사실을 인정할지를 판단함에 있어 위 우산에 대한 타인의 점유가 인정되는지, 청구인에게 위 우산에 대한 불법영득의사 및 절도의 고의가 인정되는지에 관하여 좀 더 밝혀보았어야 할 것임에도, 이를 다하지 아니한 채 절도죄의 혐의를 인정하고 이에 대하여 기소유예 처분을 하였는바, 이는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미진 또는 법리오해에 터 잡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어 자의적인 검찰권의 행사라 아니할 수 없고, 그로 말미암아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함이 마땅하다.
재판관 이강국(재판장) 김종대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송두환 박한철 이정미